1979년 10월 26일 밤에서 27일 동트는 아침까지 나는 청와대에 있었다. 나는 1층에서 마주친 김계원 비서실장을 끌고 2층 그의 사무실에 올라갔다.
“김 실장은 시종 옆에서 다 봤을 테니 자세한 얘기를 하나도 생략하지 말고 내게 다 해주시오. 언제 필요하면 그 정황을 남겨 놓고 나도 죽어야겠소.”
나도 모르게 비장한 말투로 그를 재촉했다. 그의 양복 윗도리는 대통령이 흘린 피가 배어 거무스름하면서 묽게 변색돼 있었다. 김 실장은 오후 8시쯤 궁정동 안가에서 절명 직전의 박 대통령을 승용차에 안아 눕혀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이송했다. 김계원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내가 병신 노릇을 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계원의 상황 설명 중엔 그 후 10·26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나오지 않은 내용도 있다. 나에게 한 얘기가 진실의 근사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궁정동은 서울 북악산 아래 종로구 산하 행정단위다. 조선시대 임금 중 정비(正妃) 소생이 아닌 왕의 모친 7명의 신위를 모신 칠궁(七宮)이 있다. 칠궁 안의 우물(한자로는 정, 井)이란 뜻으로 궁정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안가는 안전가옥의 줄임말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청와대 주변 궁정동·청운동·삼청동·구기동에 10여 채 산재했던 대통령의 은밀한 활동공간을 말한다. 박 대통령이 시해됐던 궁정동 안가의 식당 건물은 80년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 철거됐다. 나머지 안가들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철거되거나 기관장 공관으로 전환됐다.
이날 낮 충남 아산만 삽교천 방조제 행사를 마치고 기분 좋게 상경한 박 대통령은 저녁 6시 궁정동 만찬을 지시했다. 참석자는 박 대통령과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정보부장 네 명이었다. 미리 도착한 김계원 비서실장은 안가 마당 화단석에 김재규 정보부장과 둘이 앉아 대화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