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혁명가로 일어나 혁명가답게 떠났다. 그의 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무혈혁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18년 통치는 유혈 속에 막을 내렸다. 그 5년 전 부인인 육영수 여사마저 총탄으로 운명했다.
‘박정희의 혁명’하면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961년 5월 16일 동트는 새벽, 총격전 끝에 한강 다리를 돌파하고 을지로 광명인쇄소에 그가 나타났다. 나는 밤새도록 수십만 장의 혁명 공약과 포고문 인쇄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다. 박정희 소장은 장도영 참모총장의 육군 헌병대가 선제 공격을 하자 타고 가던 지프차에서 내렸다. 뚜벅뚜벅 한강 인도교를 한 걸음씩 전진하는 박 소장 주변으로 총알이 스쳐 지나갔다. 혁명군 쪽에선 선두였던 해병대가 응사했다. 다리를 건널 때 침착했던 박 소장은 가장 위험했던 그 순간을 넘기고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인쇄소에 도착한 박 소장은 분노에 부들부들 떨면서 “장도영이가 날 쐈어. 장도영이 쐈어. 날 쐈어”라고 거푸 세 번을 외쳤다. 장 총장은 거사 전 박 소장이 혁명계획서를 건네줄 정도로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장도영에 대한 배신감은 컸다. 장도영은 혁명 뒤에 최고회의 의장으로 추대됐으나 미군과 구정치 세력의 눈치를 봤다. 그는 결국 반혁명죄로 쫓겨났다.
혁명의 시간, 열정의 근대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이승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자네들은 괜찮나”였다. 오후 7시40분 청와대 인근 궁정동 중앙정보부장 안가(安家)에서 박 대통령은 김재규가 쏜 배신의 총탄을 맞았다.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혈을 좌우의 두 젊은 여인이 손으로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