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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참여/21세기 대비위한 긴급진단(벼랑에 선 교육: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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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교육주체” 말뿐 돈만 내는 “들러리”/육성회등 조직은 많으나 소수가 좌우/“빈손으로 못간다” 교사면담 조차 부담
『강남의 명문 K고에서는 새학기 교사배정때 육성회의 큰손이 교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우수한 교사들을 자기 자식이 소속된 문과반에 집중 배치하게 했습니다』
『S여고에 다니는 제딸년이 반장으로 선출됐다가 애비 주머니사정을 생각해서 사퇴했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교육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최근 「벼랑에 선 교육」의 한 단면을 고발한 학부모의 전화내용이다.
학부모들을 일컬어 학생·교사와 함께 교육의 세 주체라고 한다. 자녀교육에서 학부모가 차지하는 역할이 그만큼 크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과 의무 뿐만 아니라 권리도 갖고 있다. 자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더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교육에 요구하고 참여할 권리다.
그러나 우리 학부모들의 학교교육 참여는 일부 학부모의 재정적 지원기능에 치우쳐 대다수는 소외된 상태다. 이때문에 「치맛바람」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역기능만 크게 부각되어 왔다.
학교의 학부모조직에 관한 제도와 관행이 그래왔기 때문이다.
○후원기능만 강조
현재 각급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는 학부모회는 육성회를 비롯하여 어머니회,녹색어머니회,아람단후원회,체육진흥회,보이스카우트후원회,걸스카우트후원회 등 다양하다.
문제는 이를 학부모 조직이 대부분 후원기능만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부모조직인 육성회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학교교육에서의 학부모역할이 잘 드러난다.
해방직후 부족한 학교시설의 확충을 위해 45년 학교후원회가 발족된후 53년 사친회,63년 기성회,70년 육성회로 변모된 학부모조직은 그때그때 회비징수나 집행과 관련해 물의가 빚어질때마다 명칭만 변경됐을 뿐 재정적 후원역할이라는 기본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의 육성회 규약준칙은 ▲교직원연구비지원 ▲학생복리증진을 위한 시설기금부담 ▲학교시설확충지원 ▲학교운영과 교육활동에 필요한 지원 등을 사업내용으로 규정해 학부모의 학교교육참여를 「지원」과 「부담」으로 제한해 놓고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조직이 소수의 학부모들만으로 운영돼 대다수 학부모들은 참여기회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육성회는 형식적으로는 모든 학부모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회장단을 중심으로 학교가 관리하기 때문에 대표성을 상실하고 있다.
일반학부모들은 그저 고지서를 받고 육성회비를 낼 뿐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육성회 임원이 누구인지 잘 알지못한다. 심지어는 육성회원 임원회조차도 학교와 회장단이 결정한 사항을 형식적으로 승인할 뿐 회비운영에 대한 토의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일이 거의 없다.
○찬조금 징수 잡음
이때문에 학부모단체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회장 김영만)는 89년 12월 『육성회는 그 목적에 찬성해 육성회에 가입한 학부모로부터 징수하도록 되어있으나 회원가입이나 임원선출,예·결산보고 등의 절차도 없이 강제징수했다』며 육성회비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육성회의 파행운영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임원중심의 특별찬조금징수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있다.
각 학급에 수십∼수백만원씩 활당해 모금하는 특별찬조금때문에 학급담임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게 마련이고 학급 반장·부반장 등도 찬조금을 부담할만한 학생에게 맡길 수 밖에 없다는 교사들의 설명이다.
이렇게 걷힌 찬조금은 학교운영비로도 쓰이지만 상당액은 교장이나 재단에 의해 비공개로 쓰이고있어 교육계에서는 찬조금을 「학교의 지하경제」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 학부모와는 달리 선뜻 찬조금을 낸 육성회임원들은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게 마련이다. 자기 자식에 대한 특별배려는 물론 특정교사의 담임지정,특별보충수업실시 요구 등은 잘 알려진 사례다.
어머니회등 다른 학부모조직도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지만 자녀교육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취미활동·교양교육에 치우치거나 특정단체의 재정지원에 머물러 학교내 학부모단체는 학부모들의 학교교육참여의 진정한 통로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부모의 개별적인 교사접촉도 활발하지 못하며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어서 교육권 행사와는 거리가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영화 교육·사회연구부장팀이 지난해 전국의 초·중고교 학부모 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조사결과에 따르면 교사와 자녀교육문제를 상의한 경험이 있는 학부모는 48.9%였고 건의나 항의경험은 각각 12.2%,6.7%에 불과했다.
상의도 일부러 교사를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며 학년초 학부모모임에 참석했을때 의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부모들은 「빈 손으로 갈 수 없다」「시간 내기가 어렵다」고 교사면담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를 들었다. 또 상의나 건의는 자녀의 성적이나 공부 등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것이었다.
○지나치게 이기적
한 마디로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는 조직적으로는 소수중심으로 왜곡돼있고 개별적으로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전체적으로 교육환경의 개선이나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조직적인 교육권행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학부모회의 역할이 재정지원에 치우쳐 있고 ▲내자식중심의 가족이기주의 ▲학부모 스스로가 교육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방교육자치실시와 학부모의 자각,학부모연대,참교육학부모회 등 학부모단체의 활동등으로 학부모의 학교교육참여에 대한 욕구와 노력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교총이 지난해 학부모의 학교교육참여실태를 조사한 결과,앞으로 학교운영에 적극 참여하거나 기회가 주어지면 하겠다는 학부모가 각각 9.1%와 51.5%로 나타났다.
교육개발원 김영화 부장은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부모단체의 재정지원부담 해소 ▲학부모단체의 자치기능 부여 ▲지나치게 분화된 학부모단체의 통합 및 학교간 연합체 허용 ▲정기적인 교사·학부모 면담기회 제공 등을 제시했다.<이덕영기자>
◎자녀와 교사 대화채널 역할 중요/교육정책등 의견제시 풍토 절실/이진분교수 상명여대·교육학(전문가진단)
교육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이제 우리는 시각을 바꿀 시점에 놓여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교육의 주체를 국가이거나,국가이어야 한다고 이해하여왔다. 그러나 우리 교육이 당면한 현실을 놓고 볼때 교육의 주체가 더 이상 국가만 일 수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타당한 현실이다. 학부모 학생·교사라는 세 주체가 교육의 바람직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동의 협력자로서 존재하여야 함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시점에 놓여 있다.
우리 학부모들은 지금까지 국가와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환경에 재정적인 지원만 해주는 역할만을 주로 해왔다. 학부모들 역시 자기 자녀를 교사나 학교에 맡기었다는 위탁적인 사고와 자녀 양육자로서만 인식함으로써 학교에 대한 정면대결은 교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피해가 가해진다는 신화에 얽매여 있었다.
이제 우리가 당면한 교육현실에서 학부모들은 더 이상 방관내지 방치하여 파행적인 교육에 동조해서는 안되며 학부모들의 공동적인 노력을 교육현장에 투입하여 학교교육의 교육적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하여 교사·학교·교육행정가와 협력하는 교육풍토 조성에 힘을 모아야 한다.
철저한 지방자치제인 미국의 공교육은 세금을 내는 주민들의 대표들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신념아래 지방교육위원회는 지방교육에 관한 전반문제를 책임지고 있다. 특히 각학교마다 조직되어 있는 사친회(Parent Teacher Association)는 친목적인 성향이 없는 것이 아니나 특정교육문제에 대해 교육위원회에 제안도 하고 학생문제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가 공통으로 논의하고,교사들을 도와주는 지원단체로서 명예교사나 도서관운영,학교행사에 적극적인 참여도 하고있다. 어떤 경우엔 교사들의 교육방법,교육관과 상치된 의견이 있는 경우엔 학부모들 역시 교사들을 설득시키는 운동까지도 벌이기도 한다. 물론 미국과 같은 학부모의 교육참여가 우리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교육풍토가 성숙되지 않음을 들추어 시기상조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같은 학부모의 교육에의 참여는 우리사회에서 추구해 나아갈 과제임에 틀림없다.
학부모에게는 첫째,가정과 학교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하여 중재자로서 자녀들과 교사들의 대화 채널을 조성해야할 역할 둘째,자녀의 교육을 위한 교사와 학교운영의 협조자로서 자녀교육에 관련된 교육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역할 셋째,학부모·지역사회·학교와의 관계속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언할 수 있는 건의자로서의 정치적 역할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바람직한 학부모의 교육적인 학교 참여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제도적인 장치와 더불어 성숙한 학부모의 교육참여를 위하여는 학교·교육행정·학부모차원에서 공동으로 추구해야할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학부모들의 교육적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의지를 갖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통로마련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학부모들의 훌륭한 인적자원을 활용하려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행정적으로도 이에 대한 뒷받침이 필요하고 학부모들은 지금까지 비판받아온 것과 같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고 가족이기주의적인 비교육적인 교육참여가 되지 않도록 반성과 아울러 우리사회의 모든 아이들에게 인간교육이 실현될 수 있도록 올바른 교육관의 함양이 우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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