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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계의 중앙은 체면 살려주기/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본은행의 재할인율이 우여곡절끝에 1일 0.75%포인트 인하됐다. 지난달 31일 일본 정부의 긴급경기종합대책이 발표된지 하루만이다. 그동안 자민당·대장성·일본은행간에는 재할인율 인하 문제로 치열한 줄다리기를 했다. 결국 정치권의 입김이 강해서 재할인율은 인하됐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위치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라 하겠다.
재할인율 인하 논쟁은 지난 2월27일 가네마루신(금환신) 자민당 부총재의 발언을 계기로 클로스업됐다. 그는 『일본은행 총재의 목을 쳐서라도 재할인율을 인하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재계의 주장을 대변한 것이다.
가네마루 부총재의 이같은 공세에 일본은행은 금융정책의 독자성을 강조하며 이를 일축했다. 특히 『목을 쳐서라도…』라는 발언에 크게 반발했다. 언론에서도 비판적이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 대장상은 가네마루 부총재를 찾아가 신중히 발언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타 대장상은 또 기분이 몹시 상한 일본은행을 달랬다. 그러면서 재할인율을 내리도록 설득했다.
한편 미에노 야스시(삼중야강)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달 중순부터 관계자들과 은밀히 재할인율 인하 시기를 논의했다. 그도 인하필요성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부의 경기대책과 연계시키되 일본은행이 독자적으로 발표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장성은 경기대책을 지난달 31일 발표한다고 일본은행에 통고했다. 하타 대장상은 이날 각의에서 경기대책을 결정할때 재할인율 인하문제가 나오자 『아직 일본은행으로부터 연락이 없다』며 일본은행에 맡기자고 했다. 일본은행의 체면을 생각한 배려였다.
일본은행은 경기대책과 함께 재할인율을 발표할 경우 회계연도말의 주식시세를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으로 재할인율을 인하했다는 말을 듣기 쉽다며 하루 늦췄다. 그러면서 인하폭은 당초의 0.5%포인트에서 0.75%포인트로 양보했다.
결국 일본은행도 정치권의 압력에 배겨내지 못한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다만 우리와 달리 서로가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조화를 취하려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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