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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사법부도 새로워져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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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한변협이 사법부의 부조리 척결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은 사법사상 초유의 일로 의미심장하고 충격적이다. 같은 법조인이며 전직 법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한 변협에서조차 이러한 방식의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사법부의 부조리가 이미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공개적인 요구는 한 변협 관계자의 말대로 실정이 그러함에도 『판사조직이 자체정화능력을 상실한 정도에 이른것 아니냐』는 걱정을 갖게 한다.
우리가 보기에도 사법부의 부조리는 고질화되어 있다고 할만큼 그 뿌리가 깊고 만연되어 있다. 대한변협이 부조리의 사례로 열거한 것들은 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할 정도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듣고 또 들어온 것이며 실제로 경험해온 것들이다. 대한변협의 보고서는 『판·검사가 변호사 개업후 1년 이내에 10억원을 벌지 못하면 바보』라는 시중의 말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 역시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연에 의한 의리를 존중한다는 것은 뒷골목 사회에서나 숭상받을 덕목이다. 그것이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내에서조차 지배적인 덕목이 되고 있다니 분노의 감정을 넘어 슬픔마저 느끼게 된다.
많은 국민들은 그동안 사법부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간절히 소망해왔으며 사법부가 외압에 흔들려 부당한 판결을 내릴때도 사법부를 탓하기 앞서 정치현실을 먼저 개탄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사법부가 왜 그렇게 권력에 약했던가를 알것 같다. 이처럼 스스로에게 떳떳지 못한 구석과 약점이 많아서는 결코 외압에 초연하고 당당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다고해서 사법부전체를 일률적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현실속에서도 사법적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감동적인 법관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런 법관들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현재 사법부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척결할 근절책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방안은 어디까지나 사법부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방안이라도 자칫하면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궁극적인 해결책은 법관 개개인의 도덕적 각성에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화된 부조리의 틀을 깨자면 주위의 분위기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법부로서도 변명할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한변협의 보고서를 반박하거나 변명하기보다는 채찍으로 삼아 대대적인 자정운동을 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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