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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력 사장(벼랑에선 교육 21세기 대비위한 긴급진단: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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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매년 대졸 6만… 취업은 39%/“결혼·출산 등 부담” 기업들 채용 꺼려/편견없는 진로지도·기회확대 절실
올해 S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모양(23)은 지난해 10월부터 일자리를 얻기위해 신문광고에 난 기업체등에 열심히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서류심사에서 밀려나 응시기회조차 한번도 갖지 못했다.
박양은 대학4년동안 장학생으로 지낼만큼 성적도 우수했으나 아직도 취업하지 못하고 실업자로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내고 있다.
○차별의 벽 여전
박양은 평소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실력만 갖추고 있으면 취직정도는 쉽게 하리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은 고학력여성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대가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해마다 대학졸업자 17만5천여명(전문대제외) 가운데 36.3%인 6만3천여명의 대졸 여성인력이 사회로 배출되고 있지만 이들중 대부분이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여성의 취업률은 82.9%인 반면 전문대는 68%,대졸은 39%에 머물러 여성의 경우 학력이 높을수록 취업률은 남자에 비해 더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남자의 경우 지난해 순수 취업률은 58.7%였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가 최근 재학생 1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의식조사에서 96.6%에 달하는 학생들이 졸업후 취업을 희망했으며 직업을 가질 경우 평생직으로 삼겠다고 대답한 학생이 79.5%나 된 것에 비하면 실제 대졸여성들의 취업률은 극히 저조한 것이다.
교육전문가들은 남성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막대한 교육비를 투자해 길러낸 여성이 졸업후 취업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한다면 이는 우수인력을 사장시키는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육은 투자한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고급전문인력의 수요가 증대되는데도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인력의 활용을 제대로 하지못한 결과 현재 경제활동을 할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일자리가 없어 놀고있는 여성유휴인력이 1백30만명을 헤아린다.
특히 15세이상 여성경제활동인구는 89년 7백25만5천명으로 여성비중이 40.4%,90년 7백47만4천명으로 40.7%였으며 지난해에는 7백65만7천명으로 전체의 40.3%를 나타내 경제활동인구중 여성의 비중은 계속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노동시장의 신규진입 연령인 15∼24세(중졸∼대졸) 여성의 실업률도 89년 17만5천명으로 6.8%,90년 18만3천명으로 7.0%,91년 20만3천명으로 7.4%였으며 올 1월에는 22만9천명 8.5%로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3월9일 경제기획원 발표자료).
여성전문가들은 이처럼 여성의 취업기회가 제한돼 있는 것은 『여성의 노동가치를 낮게 인정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아직도 팽배해 있고 결혼·임신·출산 등 불리한 점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등에서도 경리·전산·홍보·비서직 등에만 여성을 제한해 모집할뿐 관리·행정 등 전문직에는 여성을 거의 뽑지않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여성취업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고용에 있어 남녀평등 및 육아 등 모성보호를 위해 88년 「남녀고용평등법」을 공포·시행하고 있으나 일반기업체등에서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평등법 공염불
모그룹 인사담당 김모부장(45)은 『여성의 경우 채용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게 결혼후 임신·출산문제』라고 말하고 『출산휴가의 경우 최소 2개월에서 본인이 원할 경우 1년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인력관리에 어려움이 커 여성인력 채용을 가급적 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표경희씨(49·여·이화여대 학생생활지도연구소 취업담당)는 『취업상담학생 대다수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다닐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큰 관심거리』라며 『보수·승진·업무배정·연수기회 등에서 남녀차별이 없는 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교직을 비롯,공무원·연구소 등 비교적 남녀차별이 없는 직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추세는 대학진학때 계열선택에도 나타난다. 91년 현재 대학 주요계열별 학생수를 보면 사범계가 6만4천5백96명중 여학생비율이 59.7%인 3만8천5백35명으로 가장 높고 다음이 예·체능계로 전체의 56.7%,인문계가 47.7%,사회계 19% 순이고 건축학과·고분자학과 등 자연계 공학계열의 여학생 수는 6.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첨단과학분야의 여성인력 양성이 제대로 되지않고 있으며 취업이 잘되는 공학계열의 여학생진학 기피로 상대적으로 취업에 불리한 점도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공학계열에 여학생들의 진학이 부진한 것은 일선학교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진로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교과과정도 문제
또 초·중·고교등의 교과과정에도 여성은 가정,남성은 사회로 양분돼 어릴때부터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돼 졸업후 여성의 사회진출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여성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능력을 발휘토록 하는 것은 우리사회 발전의 중요한 과제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고급여성인력을 길러내고도 활용할 방책을 세우지 않는 국가·사회적 낭비를 언제까지 계속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사회변화에 맞게 여성교육체제를 개편·혁신하면서 고학력 여성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정재헌기자>
◎차별채용금지·기업내훈련 등 외국예 참고필요/장성자 여성개발원 자원개발실장(전문가진단)
우리는 다른나라에 비하여 뒤늦은 감이 있으나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을 공포,고용에 있어 남녀차별을 막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 시행된지 4년이 지났지만 실질적으로 여성이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는데 공정한 기준에 의한 채용,조직내에서 능력에 따른 평가와 업무배치,전문성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기회의 제공등에 있어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기업체는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취업상담창구에 몰려드는 대졸여성과 기혼여성들은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이들을 국가의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고용상의 평등을 좀더 조기에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 실효성을 얻기위해 획기적인 대책수립을 기대하면서 외국의 몇가지 예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용평등법을 제정한 미국은 1965년 대통령령으로 차별수정조치(Affirmative Action)을 채택하였다. 연방정부와 계약관계에 있는 기업,정부의 재정원조를 받고 있는 교육기관·연구기관에서는 성·인종·종교·출신국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또한 이 기관들은 종래 취업의 기회가 불균형하게 주어졌던 사람들의 고용기회 확대실시를 위한 숫자 및 실시내용을 구체적으로 작성,제출토록 하고 계획대로 실시했는가를 평가할수 있는 실적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토록 했다. 계획서를 제출할 의무를 갖는 관련기관은 2백5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기업,정부,1백만달러이상의 계약고를 가진 업자로 한정하였으며 명령위반자는 형벌은 받지않지만 명단의 공개,또는 계약·원조·융자의 취소 등 사업상 강력한 제재를 받을수 있다.
스웨덴정부는 1974년 인구가 적은 지역에 새로 공장을 짓거나 시설을 확장할 때 정부가 지역개발원조자금으로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남녀 노동자수가 각각 40%이상 되도록 인원비례를 정해 놓았다.
또한 전통적인 남성의 직업에 여성을,반대로 여성의 직업에 남성을 고용할 경우,또는 이러한 고용을 추진하기 위한 기업내 훈련을 실시할 경우 사용자에게는 노동자 1인당 한시간에 5크로네씩 평등보조금까지 지급해주었다.
영국에서도 남녀고용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별히 여성 또는 남성에게 기회를 주는 각종의 편의조치(Positive Discrimination)를 취하고 있다. 과거 12개월동안에 특정 직무에 종사하는 여성이 전혀 없거나 또는 소수밖에 안될 경우 직업훈련기관은 당해 직무의 훈련수강자를 여성에게만 한정한다든가,신규채용 모집공고에 「기회균등실시 회사」임을 명시하고 원서에 인종·성·혼인기입란을 두지않고,성차별을 받았을 경우 소송절차도 알려주는가 하면 하위적 사무직원에게 관리직 자격을 부여하는 승격훈련프로그램을 실시하는등의평등실현 프로그램을 운용해 실질적으로 여성에게 기회가 많이 부여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도 한국적 상황에 맞는 평등실현 프로그램을 모색,활용함으로써 인력난 해소와 여성인력의 적극 활용이라는 2중효과를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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