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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브랜드에 밀리고 휴대전화는 저가에 쫓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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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동차
'원고-엔저'로 가격 경쟁력 잃어
도요타 등에 고전 … 점유율 하락

현대자동차 노조는 1987년 이후 딱 1년(1994년)만 빼고는 매년 파업했다. 올해 초에는 시무식 다음날부터 회사 측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12일간 불법 파업을 벌였다.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던 회사 측은 '수출에 큰 차질이 온다'며 결국 노조와 성과급 지급에 합의했다. 불법을 용인했다며 현대차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다는 여론의 질타에도 현대차 노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대차가 지금까지 연례 파업으로 인해 입은 매출 손실만 10조원이 넘을 정도다.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55년간 단 한번도 파업하지 않았다. 어느 회사의 경쟁력이 더 높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외국 자동차 회사와 합작 형태로 승용차를 생산하는 중국 자동차 업체는 파업할 겨를이 없다. 한국.일본의 선진 제조 기술을 따라잡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는 2005년부터 중국에서 뉴쏘나타를 생산했다. 월 판매 목표는 5000대. 그러나 지금까지 월평균 1500대가 팔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톈진도요타(도요타 합작사)가 생산하는 캠리와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캠리는 현재 주문이 6개월치나 밀려 있다.

현대차는 미국에서도 캠리 때문에 뉴쏘나타 판매가 급감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자동차 브랜드 조사기관인 인터브랜드가 평가한 결과 현대차의 브랜드 파워는 75위였다. 전년보다 아홉 단계 올라섰지만 도요타(7위).혼다(19위)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일본 업체만 앞서가는 게 아니다. 후발 업체인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중국 자동차 업체는 2005년부터 유럽.미국 시장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수출 대수는 연 1만 대 미만으로 미미하지만 기세는 무섭다.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연간 30만 대를 미국에 수출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중국의 생산 대수는 미국.일본에 이어 3위였다.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에 이의를 다는 전문가는 없다. 중국 업체는 올해 초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유려한 디자인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놓아 업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아직은 괜찮은 성적표를 받고 있지만, 업계가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지난해 자동차 생산대수는 385만 대로 세계 5위. 수출액은 전체의 13.6%였다. 이 같은 수출 실적이 원화 강세의 환율 효과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림대학 김필수(자동차공학) 교수는 "원고-엔저의 영향으로 그동안 가려져 있던 한국 업체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며 "브랜드 파워가 밀리는 상황에서 버팀목인 가격마저 불리해지자 소비자들의 호응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때문에 가격 차이를 더 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순간에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기도 어렵다는 게 현대차의 고민이다. 새로운 전략 차종을 투입해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노사 관계, 하이브리드카 개발 중요

자동차 전문가들은 자동차 부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안을 다양하게 내놓았다.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우선 하이브리드카 등 신개념 자동차 생산을 서둘러야 한다고 충고했다. 기술은 일본 업체가 선점했지만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남다른 스피드 경영과 생산성 높은 현장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업체에 비해 가격이 싼 하이브리드카를 양산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래서 유럽.미국 시장은 물론 인도.중국 등 신흥 시장에 차를 먼저 투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한국 업체들이 가장 우선 순위를 둬야 할 것으로 노사 문제를 들었다. 우리투자증권 안수웅 연구위원은 "현대.기아차는 노사 관계가 안정될 경우 지금보다 생산성을 20%가량 올려 차량 가격을 10% 정도 인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픽업트럭 시장(지난해 1000억원)에 뛰어들어 경쟁할 픽업트럭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는 충고도 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픽업 트럭의 수입관세(현 25%)가 점진적으로 철폐되므로 하루빨리 브랜드를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 산업의 경우 부품들을 미리 조립해 차에 장착하면 되는 부품 모듈화 생산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휴대전화·IT기기
노키아.애플 등 '1위' 영향력 커져
치열한 경쟁 속 도약 - 퇴보 갈림길

2000년대 들어서며 한국은 한발 앞선 개념의 휴대전화.MP3 플레이어 등 정보기술(IT).모바일 기기들을 내놓으며 세계시장을 선도했다.

레인콤의 아이리버는 소니의 워크맨 대신 MP3 플레이어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미국에서 유행한 농담 중에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코롤라(도요타의 소형차)와 모토로라를 렉서스와 애니콜로 바꾸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애니콜은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의 상징'이 됐었다.

그러나 한국산 IT 제품들의 현주소는 도약과 퇴보의 갈림길이다. 주춤했던 노키아.애플 등 선두 업체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중국산 제품의 저가 공세도 거세다. 한편으로는 프린터.디지털 카메라 등 새롭게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품목도 나타난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기회도 많다는 신호다.

지난해 한국은 휴대전화를 168억 달러어치 수출했다. 2005년보다 12% 줄어들었다. 저가폰 공세에다 환율 하락에 따른 경쟁력 악화가 주 요인으로 꼽혔다. 휴대전화 전문업체 팬택계열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준비 중이고, VK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반면 중국은 노키아.모토로라 등의 보급형 제품 생산을 도맡으며 성장가도를 달린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은 지난해 11.4%로 2001년(15.2%)보다 뚝 떨어진 데 비해 같은 기간 중국산 제품은 11.7%에서 38.3%로 치솟았다.

한국이 종주국인 MP3 플레이어의 성장과 퇴보는 한국 IT 산업 경쟁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레인콤은 2001년 깔끔한 디자인을 앞세운 아이리버로 2004년 4500억원의 매출(영업이익 511억원)을 올리며 세계 1위를 넘봤다. 그러나 레인콤의 아이리버는 2005년에 불기 시작한 애플의 아이팟 나노 열풍에 밀렸다. 레인콤은 지난해 544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애플은 아이팟 출시 5년 만에 1억 대를 팔아 미국 시장의 80%, 세계 시장의 60%를 장악했다. 1979년 첫선을 보인 소니의 워크맨이 1억 대를 돌파하기까지 13년6개월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아이팟의 부상은 놀라운 것이다.

IT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품목이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1300억 달러 규모인 세계 프린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올 초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DM) 총괄 사령탑에 오른 박종우 사장은 "프린터 산업은 전자.화학(잉크.토너).광학(레이저) 등 여러 분야의 정밀기술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라며 "세계시장 점유율 15% 안팎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삼성전자가 2010년에 달성하면 반도체와 맞먹는 200억 달러가량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카메라도 선전하고 있다. 삼성테크윈은 지난해 국내시장 점유율(30%) 1위로 올라선 데 이어, 세계시장 점유율도 7.8%(2005년 3.8%)로 높이며 5위에 올라섰다.

기발함.속도는 필수 … 싸게 만들어야

IT 및 디지털 기기의 승부처는 '기발함'과 '속도'다. 이는 한국의 최대 강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한국 IT 업체들은 다국적 기업들의 공격적 마케팅과 저가 제품 공세로 다소 수세에 몰렸다. 우리의 강점에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까지 보태야 한다.

디지털 기기가 싸지는 것은 이제 대세다. 싸게 제조하는 능력, 즉 효율적인 생산성과 저가 제조 기술 등을 확보해야 한다.

디지털 제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은 거의 나왔다. 차별화를 위해선 콘텐트.디자인.브랜드 등을 통한 새로운 경쟁 우위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카일렉트로닉스.웹가전.바이오가전.건강가전 등 혁신적인 상품으로 시장을 흔들어야 한다.

자기 기업 내부의 기술과 자원만으로는 혁신적 상품을 만들 수 없다. 애플의 아이팟은 MP3플레이어와 함께 광범위한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는 서비스까지 묶어 판매함으로써 시장에서 성공했다. 동종.이종업계와 파트너십을 맺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눈과 팔이 있어야 한다.

한국산 휴대전화는 여전히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므로 이를 포기해선 안 된다. 한국의 단말기 및 서비스 분야와 중국의 통신장비를 결합해 4세대 통신기술에서 협력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전문가도 있다.

<공동 연구팀>

◆ 중앙일보=양선희 차장(팀장), 김태진.김창우 기자

◆ 무역협회=심남섭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 삼성경제연구소=복득규.최병삼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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