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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제 해결 위한 정치적 결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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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제안 쏟아진 분과 토론

경제
"보유 외환 5%씩 내 공동기금 조성하자"

16일 일본 도쿄의 데이코쿠 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30인회’의 환경.에너지 분과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고미야마 히로시 도쿄대 총장이 주재한 회의에서는 환경 보호와 에너지 분야의 3국 공조를 위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도쿄=김경빈 기자

"30인 회의의 의견으로 3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강력히 호소하자. 3국 간 FTA의 장애물은 농수산물인 만큼 내년 베이징에서 열리는 3차 회의에서는 농업과 FTA 분과를 따로 만들어 집중 토론하자."

오카무라 다다시(岡村正) 도시바 회장은 경제.금융 통합을 논의한 분과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한.일 FTA는 한.미 협상보다 먼저 시작됐지만 농산물 개방 등의 문제로 중단돼 있다"며 "일본의 농수산업은 높은 경쟁력이 있는 만큼 빨리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또 "3국이 FTA를 추진함에 있어 상호 제도 및 법률의 통합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한.일 FTA 협상은 궁극적으로는 3국 간 FTA을 염두에 두면서 진행해야 한다"며 "이는 중국과 일본이 협상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덩중한(鄧中翰) 중국 중성미전자 회장은 "3국 간 FTA 추진은 가능한 분야부터 접근해 가는 테크닉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기술 교류를 통한 3국 간 에너지.환경 분야의 공동이익 추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역내 공동 기금 및 통화의 창설도 주요 의제였다. 판강(樊綱) 중국 개혁기금회 이사장은 "3국이 외환보유액이 넘쳐나는 만큼 각국이 보유 외환의 5%가량을 갹출해 공동 기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런 기금은 향후 어떤 나라가 금융위기에 처할 경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강신호 전 전경련 회장은 "쓸 용도가 많으니 그 비율을 10%로 올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사공일 이사장은 "그 같은 기초적인 신뢰의 기반 아래 '아세안+3(한.중.일)'의 공동 통화인 아시아통화단위(ACU)의 조기 구현을 30인 회의가 제안하자"고 주장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와세다대 교수는 "3국이 복수 통화에 의한 채권을 발행해 '동아시아 환경 펀드'를 만들자"며 "이런 제안을 30인 회의의 이름으로 내놓자"고 말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3국이 공동으로 계절 간 온도 손실을 막기 위한 방열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또 서해의 환경 복구를 통해 지역의 식량안보도 높여나갈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고지마 아키라(小島明) 일본경제연구센터 회장은 "비싼 돈을 주고 석유를 사와야 하는 부담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기 위해 석유 비축을 공동으로 하는 방안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원유 공동 구입으로 연 80억 달러 절약을"

"3국이 가지고 있는 환경 관련 기술에 대한 공동 표준을 마련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은 과감하게 공개하자."(조 후지오.張富士夫 도요타자동차 회장)

"3국 간 에너지 협력 기구를 만들고 대체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공동 개발하자."(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중.일 30인회'의 환경.에너지 분과에서는 환경 보호와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날 토론은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 도쿄대 총장 주재로 2시간30분가량 벌어졌다.

토론자들은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3국이 공조할 필요성이 크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은 "3국은 지금까지 에너지를 경쟁적으로 확보하는 데만 치중했다"며 "이 때문에 중동 원유를 구입할 때 미국이나 유럽 국가보다 배럴당 1.5달러씩 한 해 총 80억 달러를 더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3국이 공동 보조를 취해 대규모 원유 수입국으로서 구매력을 발휘하고 에너지 공동 개발과 공동 원유 비축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이토추 상사 회장은 "제주도든 어디든 적절한 곳에 3국의 '환경기술 혁신센터'를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3국 간에 논의가 지지부진한 '경제 연대 협정(EPA)'을 빠르게 진척시키자"고도 촉구했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유럽에서는 2012년 이후의 '교토 의정서 이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선진국과 개도국 발전 단계의 입장을 골고루 대변할 수 있는 한.중.일이 '포스트(post) 교토'논의에서 공동 보조를 취하자"고 말했다. 고미야마 히로시 도쿄대 총장은 "3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 세계 총배출량의 24%를 차지한다"며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동아시아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자"고 말했다.

리창주(李長久) 신화사 국제문제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에너지 재활용 비율은 30% 정도로 선진국(70~80%)과 비교하면 무척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이 환경과 관련해 앞선 설비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중국의 환경 관련 상품 시장과 결합하면 동북아 에너지 문제를 좀 더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웨이푸성(魏復盛) 중국 공정원 환경위원회 부주임은 "중국 공장의 50% 이상이 1960~70년대 노후 설비여서 에너지 효율이 극히 낮다"며 일본과 한국의 환경 기술 이전을 강조했다.

문화
"일본 반성해야 미래 열린다"

문화.민간교류 분과 토의에서도 구체적 제안들이 많이 나왔다. '지적(知的) 연대를 통해 동북아의 새 미래를 열자'는 창립 취지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사회를 맡은 도야마 아쓰코(遠山敦子) 일본 신국립극장 이사장은 3국 간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제안을 요구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3국 관계에서 정치.경제보다 사회문화.기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물 표면이 얼 순 있지만 그 밑엔 따뜻한 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며 "정치.경제적으로 반일(反日).혐한(嫌韓) 문제가 떠올라도 많은 관광객이 오가고 문화 프로그램이 이뤄졌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앞으론 정치.경제가 우선되고 사회문화.기술이 뒤따르는 페스트(pest)형이 아닌 사회문화-기술-경제-정치로 가는 스텝(step)형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이자 작가인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는 "3국의 문화인과 공예품 등 문화예술품을 소개하는 카드를 만들어 보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바오청(紀寶成) 인민대 총장과 후웨이(胡偉) 상하이교통대 국제.공공사무학원 원장은 "3국의 미래는 젊은이에 달려 있다"며 "3국 간 대규모 유학생 교환"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3국이 각국에서 존경받는 작가의 작품 10권씩을 골라 번역해 소개함으로써 문화 이해의 폭을 넓히자"고 제안했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민족국가의 틀에 고착된 배타적 민족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상이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며 "문화적 네트워크 구축"을 언급했다.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고문은 "벼 농사와 조상 숭배는 3국이 공유하는 문화적 토대"이며 "여기엔 자연 정복이 아닌 자연과의 상생(相生) 정신이 깃들어 있다"며 3국은 이 같은 문화적 연대를 바탕으로 "유럽연합에 비견될 아시아연합을 탄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메하라는 또 한.중 침략과 전 지도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일본의 잘못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그는 "일본은 반성할 줄 알아야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유상철 (중앙SUNDAY 국제 에디터).김경빈(영상부문).예영준.김현기(도쿄 특파원)
장세정(베이징 특파원).고정애(정치부문) 기자<scyou@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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