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지역색 짙게 화장 … '전주 영화' 로 정겨운 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봄엔 전주, 가을엔 부산'. 영화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골수 시네필의 연간 일정표를 한마디로 줄이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매년 봄과 가을에 각각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영화제 매니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됐다. 26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제8회 전주영화제가 세계 37개국 185편의 영화라는 풍성한 잔칫상을 차려놓고 본격적인 관객 맞이에 나섰다. 개막작엔 한승룡 감독의 '오프로드', 폐막작엔 홍콩 두치펑(杜琪峰) 감독의 '익사일'(Exiled)이 선정됐다.특히 개막작은 12일 오후 예매를 시작하자 92분 만에 매진되는 인기를 끌었다. 일반 상영작 예매(www.jiff.or.kr)도 지난주 시작됐다.

#국제영화제에도 지역색이?

올해는 영화제의 얼굴이라는 개막작부터 지역색이 물씬 풍긴다. 전주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사 활동사진이 제작한 '오프로드'는 최초의 전주 지역 장편영화로 불린다. 감독을 비롯해 전주 지역의 스태프가 대거 참여했다. 전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그 속에서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전라북도 영상산업육성을 위한 저예산영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전북도와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으로 제작비를 댔다.

지난해에 이어 2년째를 맞은 '로컬 시네마 전주'도 있다. 전주에서 만든 최신 단편 영화를 모았다. 올해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여성 어민을 그린 오종환 감독의 '계화갯벌 여전사전2'를 비롯해 4편이 선보인다. 관객숙소인 'JIFF 사랑방'에선 싼값(1박에 1만원)에 전주 특유의 한옥 체험 기회도 제공한다.

#영화로 만나는 유명인의 삶

조지훈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올해는 유명 인물을 소재로 한 전기영화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2001년 도쿄 지하철역에서 만취한 일본인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고 이수현씨의 삶을 그린 '너를 잊지 않을거야'(감독 하나도 준지, 일본)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근대 바둑계의 전설로 불리는 우칭위안(吳淸源) 9단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기성 오청원'(톈좡좡, 중국), 프랑스 축구 스타 지단의 생생한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지단: 21세기의 초상'(더글러스 고든.필립 파레노, 프랑스.아이슬랜드), 중국의 유명한 화가 리우샤오둥의 작업 과정을 쫓아간 다큐멘터리 '동'(지아장커, 중국) 등도 관객을 기다린다.

전주영화제의 간판 프로그램인 '디지털 삼인삼색'은 그동안 아시아 감독 위주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범위를 넓혔다. 포르투갈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토끼 사냥꾼들'을 비롯해 '편지'(유진 그린, 프랑스), '베스터보르크 수용소'(하룬 파로키, 독일)가 상영된다. 폐막작 '익사일'은 1999년 마카오의 중국 반환 전후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그린 액션 영화다. 이 밖에 '페이크(가짜) 다큐멘터리의 대부'로 불리는 영국 피터 왓킨스 감독 회고전, 터키의 숨은 걸작을 소개하는 터키영화 특별전, 체코의 거장 감독 이리 멘젤 특별전, 지난해 세상을 떠난 프랑스 감독 다니엘 위예 추모전 등도 준비됐다.

#영화 공부도 하고 음악도 듣고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제의 전부는 아니다. 특히 영화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반길 만한 프로그램이 많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불러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마스터 클래스'가 눈길을 끈다. 올해는 영화미술(프로덕션 디자인)을 주제로 '황후화'의 후오팅샤오, '꿈의 은하'의 이소미 도시히로, '타짜'의 양홍삼 미술감독이 참가한다. 유명 영화감독과 관객이 1시간 정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네토크'도 있다. '오래된 정원'의 임상수 감독을 비롯해 이리 멘젤, 페드로 코스타, 제키 데미르쿠부즈(터키) 감독이 관객을 만난다.

야외에서 영화를 보고 유명 가수나 밴드의 공연을 즐기는 '봄.밤, 소풍'이란 이벤트도 있다. 29일 밤에는 영화 '라디오 스타'의 상영이 끝난 뒤 이 영화에 직접 나왔던 록밴드 노브레인의 공연이 펼쳐진다. '미녀는 괴로워'와 YMCK(27일), '너를 잊지 않을 거야'와 더 멜로디.스완 다이브(28일), '묵공'과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30일) 등의 영화상영과 공연도 기다리고 있다.

주정완 기자

개막작 '오프로드' 한승룡 감독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오프로드'는 은행강도 사건에 얽힌 세 젊은이의 꿈과 절망적 현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승룡(39.사진) 감독은 '납득할 수 없는 일들'(2000년)을 비롯해 다수의 단편을 선보였으며, 이번에 장편 데뷔작 '오프로드'를 내놨다. 동국대 대학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에 공동 편집자로도 참여했다. 현재 전주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있다.

-소감이 남다르겠다.

"함께 고생한 배우와 스태프에게 큰 선물이 됐다. 저예산인 데다 유명 배우도 없어 영화제가 아니면 관객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개막작으로 주목을 받으면 앞으로 극장 개봉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은행강도를 다뤘는데. "상사의 비리 때문에 감옥에 갔다온 은행원 출신 택시기사가 우연히 은행 강도의 인질로 잡혀 끌려다니는 로드 무비다. 둘 사이에 인생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몸을 파는 매춘부도 끼어든다. 한번 잘못된 길로 빠진 사람들이 다시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다뤘다."

-전주발 최초의 장편영화다.

"그동안 전주에서 촬영한 영화는 많았지만 전주 지역 사람들과 제작사가 중심이 돼 장편을 만든 것은 처음이다. 총 23회 촬영 중 한번을 제외하면 모두 전북 지역에서 진행했다. 이 영화가 지역 영화제작의 모범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

-저예산이라 어려웠던 점은.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촬영하는 로드 무비라 비용과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3억5000만원이란 저예산으로 영화를 찍다 보니 한계가 많았다. 감독으로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주정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