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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값 왜 비싼지 나도 몰라요"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올 가을께 재개될 것 같다.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늦어도 추석 전에는 수입을 재개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합리적인 절차와 기간’을 거쳐 개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쇠고기 문제는 한·미 FTA 체결의 최대 난관이었다.

한국인에게 미국산 쇠고기는 ‘애증의 대상’이다. 한우 농가 입장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엄청난 위기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파급영향 분석’에 따르면 한우 산지 가격은 최소 6.4%, 최대 39.2%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소가 한국 소를 잡아먹는다는 것이 농민들의 인식이다.

소비자에게는 희소식이다. 한우 고기는 서민에게 사치품이나 마찬가지다. 웬만한 한우 전문식당에서는 등심 1인분(150g)에 4만원을 받는다. 4인 가족이 간단한 술과 음료를 시키고 된장찌개를 곁들인 식사를 하게 되면 20만원이 훌쩍 넘는다. 1인분 150g은 결코 충분한 양이 아니므로 욕심을 부리면 과용할 수밖에 없다. 한우 전문식당을 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배짱과 결단이 필요하다.

이렇게 비싼 한우 가격 때문에 도시 서민의 상당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내심 환영하고 있다. 쇠고기 값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보다 저렴하게 한우 고기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4월 5일 강남의 한 한우 전문점에서 만난 이용오(45)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우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희망하는 한우 600g의 소비자가(1등급 기준)는 3만원 선. 현재보다 절반 정도 가격이 떨어져야 가능한 수치다. 그러나 미국산 소가 다시 들어온다 해도 이씨의 소망이 이뤄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1인분 150g이 5만5000원

한우 고기가 비싼 이유는 여러 가지다. 산지에서 kg당 9000원 선에 판매되는 한우가 고급식당에 오면 그 가격은 20만원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무려 20배 가까이 가격이 뛴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선호하는 한우의 등심과 갈비는 소 한 마리의 10%에 불과하다. 산지에서 소 한 마리를 잡으면 보통 35%만 정육으로 나오고 나머지 65%는 뼈와 내장, 그리고 가죽이다. 뼈는 kg당 1만5000~2만원, 내장과 머리는 4000원, 가죽은 1000원 내외에 팔린다.

고급 한우식당에서는 가장 육질이 좋다는 ‘꽃등심’이 주요 메뉴로 등장하지만 이 부위는 등심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나머지 등심은 국거리나 찌개용으로 사용한다. 이 같은 손실을 감안할 때 1인분(150g) 5만원을 상회하는 가격은 그리 비싼 것이 아니라는 게 식당 주인들의 항변이다.

문제는 산지 가격이 정체하거나 하락할 때도 한우의 소비자가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농협의 ‘2006년 축산물 가격 및 수급 자료’에 의하면 산지 한우 가격은 한 마리(600kg)에 2006년 현재 475만원이다. 2003년 469만원, 2002년 471만원으로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한우의 공급은 2003년 이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1등급 이상의 한우 비율도 2000년 14.8%에서 지난해에는 50% 이상으로 늘었다. 그러나 한우의 소비자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등급 등심 500g 가격은 2003년 2만8043원에서 2006년 3만6070원으로 28% 상승했다.

한우 식당에서 고기값은 그야말로 수직 상승이다. 2003년 1인분 180g의 가격이 3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150g당 5만5000원까지 올랐다. 무려 120% 이상 인상된 가격이다. 1인분 200g 또는 180g하던 관례가 어느새 150g으로 정착됐다. 최근에는 1인분을 130g까지 줄인 업소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값싼 수입 쇠고기와 한우가 입맛의 양극화를 가져오면서 한우는 어느새 미식가 또는 부자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 품목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우에 특별소비세가 붙지 않는 한 이렇게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이냐”는 게 서민들의 항변이다.

이미 고급식당에서는 한우 가격을 올려받기 위한 여러 가지 ‘테크닉’이 구사되고 있다. 1인분 정량을 줄이고 등급도 식당마다 세분화해 가격을 올려 받는다. 꽃, 눈꽃, 스페셜 등의 이름을 붙여 비싼 가격을 정당화하는가 하면 봉사료나 부가가치세를 손님에게 전가해 실제 가격을 인상하기도 한다.

농림부가 인정한 한우 등급은 모두 5단계다. 최상등급인 1++등급, 그 다음이 1+등급, 그 다음이 1등급이다. 1등급이 모두 3단계로 이뤄져 있고 그 다음 순번이 2등급, 3등급 한우다. 보통 1등급 한우를 최상등급으로 알고 있지만 +가 붙지 않은 1등급은 중간 정도의 육질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부위라 하더라도 등급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등심의 최고 등급인 1++는 kg당 6만4000원, 1+등급은 5만8000원, 1등급은 5만2000원이다. 한 등급 차이로 무려 10%가 넘는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도매와 소매 가격 사이에는 무려 2배에 가까운 유통 마진이 붙는다. 시내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 팔리는 한우 1++등급 4.8kg 선물세트 가격은 46만원이다. 1kg에 9만6000원인 셈인데 도매 가격은 그 절반 정도인 kg당 5만4000원이다. 식당에서 최상 등급의 한우 1kg을 먹기 위해선 20만원을 훨씬 상회한다.

유통 마진이 40%나 차지

양념구이로 사용되는 2등급 등심도 마찬가지다. 2등급 등심의 도매가는 1kg에 3만5000원 선이다. 150g 기준 1인분 기준에 6000원꼴이다. 그런데도 일부 식당에서는 2등급 한우 1인분을 4만5000원에서 5만원을 받고 있다. 도매가의 무려 8배 이상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한우 농가 역시 이렇게 높은 소매 식당의 마진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토로하고 있다. 한우협회 남호경 회장은 “고급 부위를 비싸게 먹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위마저도 비슷한 가격에 팔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부풀려진 유통 마진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현재 쇠고기의 전체 유통 마진율은 상장 수수료 5%, 중도매인용 비용 4~10%, 하역비 2%, 기타 도축비용을 합치면 전체 가격의 35~40%를 상회한다. 소비자가격의 거의 절반을 유통 판매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산지의 소값이 크게 떨어져도 소비자값은 그대로인 것도 미스터리다. 동네 정육점, 수퍼마켓, 재래시장, 소규모 음식점에서 파는 2~3등급 쇠고기 값은 요지부동이다. 이 미스터리의 주인공은 바로 중간상인들이다.

요즘 소 시장에서 소나 송아지를 산 중간상인은 바로 도축하지 않는다. 무게가 600kg 가까이 나갈 때까지 키워 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지 소값이 떨어져도 도축되는 물량이 줄지 않으니 소매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경북 일대 지역의 소 중개상인 지명수(43·가명)씨는 최근 소와 송아지 40마리를 키우고 있다. 500kg짜리 황소를 350만~360만원대에 사서 600kg대의 소로 키워 파는 것이 지씨의 상술이다. 100kg 정도 무게를 늘려 서울 축산물공판장에서 500만원 정도를 받고 되판다. 불과 5~6개월 만에 5000만원 이상의 수입이 가능해진다. 100두를 키우는 한우 농가의 1년 순수입이 700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입이다.

농가가 한우를 출하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산지 가축시장에 출하하는 것으로 거세하지 않아 주로 품질이 떨어지는 3등급 수준의 소가 거래되며 전체 도축 물량의 17%를 점유하고 있다. 둘째, 농가가 직접 전국의 14개 공판장 및 도매시장에 계통 출하하는 경로로 거래 가격은 경매를 통해 형성되며, 전체 도축 물량의 25%를 차지한다. 셋째, 유통·식육업자들이 개별적으로 농가에서 구매한 후 도축·가공하는 경로로 전체 도축 물량의 58%를 차지하며, 거래가격은 주로 농협 서울공판장 경락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한·미 FTA 타결 후 한우 가격 폭락을 우려한 농가들이 한꺼번에 소를 팔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FTA 타결 이후 600㎏짜리 큰 수소 산지가격은 460만원으로 타결 전보다 5만원 정도 하락했지만, 큰 암소 산지가격은 530만원으로 타결 전보다 무려 30만원 가까이 곤두박칠쳤다.

암송아지도 250만원으로 FTA 타결 전보다 32만원이나 떨어졌고 수송아지 산지가격은 200만원으로 타결 전보다 20만원 정도 떨어졌다. 이는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개방될 경우 소값 급락을 우려해 한우 사육농가들이 앞다퉈 출하하고 있기 때문인데, 한우 송아지를 구입하려는 농가까지 크게 줄면서, 향후 가격의 추가하락이 예고되고 있지만 한우의 소매가가 떨어지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본격 수입되더라도 당장은 쇠고기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이 굳이 쇠고기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을 것이고 수입물량도 초기에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가격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유통 단계 정비해야

개방화 시대를 맞아 한우고기 가격은 고급육과 저급육 시장으로 이원화되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주로 저급육이 거래되는 산지 가축시장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고급육 위주의 도매시장 가격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우 가격은 2002년 이후 계속적으로 사육 두수가 증가해 지난해 연말부터 가격하락이 예상돼 왔다.

또 그동안 한우 가격이 너무 높게 형성돼 왔기 때문에 하향 안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유통 마진과 복잡한 유통단계가 정비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한우를 즐길 수 있는 시절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 한우업계의 관측이다. 한우의 명산지 경북 봉화군청에서 20년 이상 축산공무원 생활을 했던 강신권(46)씨는 한우의 미래를 이렇게 진단했다.

“쇠고기 시장의 개방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경쟁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과거처럼 가격에만 매달려 안주하던 시대는 끝났다. 정부 대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우 농가 스스로 타개책을 개발해야 한다. 능동적으로 달려들면 한우는 죽지 않는다. ”

“내다 판 소 어디로 가는지 몰라”

경북 봉화의 한우농 김도현씨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의 한우농 김도현(55)씨는 한우를 키운지 올해로 25년째다. 현재 그는 1300평의 부지에 280평 규모의 축사를 유지하며 봉화 한약우 100두를 키우고 있다. 그는 매년 50두씩의 한우를 출하, 마리당 약 150만원 정도의 순익을 거둬 연평균 소득 7500만원을 올리는 중농이다.

그는 미국산 소가 수입되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봉화 한우의 브랜드 경쟁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지난 4월 4일 경북 봉화 한우 농장에서 그를 만나 한우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현재 한우의 출하 가격에 만족하나.
“한·미 FTA 고위급 회담이 열리면서 산지의 한우값이 kg당 1000원 정도 하락했다. 몇 달 전 9500원 하던 것이 지금은 8500원이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

소비자들은 한우의 질에 만족하면서도 값이 비싼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한우 농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한우의 소비자가격이 더 떨어져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 문제는 산지 가격이다. 산지의 농민들은 가격 그 자체보다 안정성을 더욱 중시한다. 지속적이면서도 일정한 수익이 보장돼야 한우를 키울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산지 가격이 안정돼 큰 도움을 받았지만 앞으로 그런 추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작아 보여 걱정이다. ”

한우의 투매 사태를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우가가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 투매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가격동향에 매우 예민하다. 장기적인 가격하락이 예상되면 투매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정말 두렵고 불안하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선택이 불가능할 때 한우 농가의 대책은 무엇인가.
“나는 젊은 시절 우리 밀이 몰락하는 과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한우는 그렇게 만만한 상품이 아니다. 품질을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 한우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밀처럼 몰락하지 않는다. 봉화의 한약우는 이곳의 특산 약재인 당귀 등 한약재를 사료에 섞어 탁월한 품질의 쇠고기를 생산한다. 낙관도 하지 않지만 비관할 필요도 없다. ”

유통 과정을 알고 있나. 지나치게 높은 유통 마진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봉화 한우는 상당한 브랜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직영점 운영 등 유통과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아직도 개인 중개상에 의존해 소를 판다. 중개상이 소를 수집해 서울 축산물도축장에 보내지만 그 이후의 과정을 잘 모른다. 우리 군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횡성 한우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유통이나 브랜드 인지력이 떨어진다. 이 문제만 해결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

가짜 한우가 횡행하면서 한우에 대한 공신력이 떨어지는 것도 큰 문제다.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축산물 표기법의 정착, 생산이력제 등의 전국적인 실시가 필수적이다. 젖소로 쓰이는 홀스타인 종의 수소를 한우로 오해하는 소비자가 많다. 국내산 비육우가 모두 한우인 것은 아니다. 표기를 할 때 ‘국내산 육우’로만 할 것이 아니고 ‘홀스타인’이라는 것을 명기해야 한다. 90평 이상의 한우 업소에만 적용되는 원산지 증명 의무를 전체 식당으로 확대해야 한다. 일본의 ‘화우’처럼 품질을 높이고 외국산 쇠고기의 철저한 유통관리가 필요하다. 한우를 한우로 대접해 달라는 말이다. ”

<이코노미스트 8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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