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표와 좋은 정치(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선거」라는 말은 중국의 고전 『회남자』에 처음 나온다. 권신이 인재를 등용할때 사용한 용어였다.
따라서 당시의 선거는 오늘날처럼 다수의 선거인이 제한된 몇명의 후보가운데서 인재를 뽑는게 아니라 제한된 몇명의 선거인이 다수의 후보가운데서 인재를 뽑는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수의 선거인이 투표에 의해 의사를 결정하는 오늘날의 선거방식은 고대그리스의 「도편추방」(Ostrakismos)에서 연원을 찾는게 정설로 되어있다.
당시 그리스의 도시국가에는 참주(tyrannos)라는 1인지배자가 등장,처음에는 선정을 베풀다가 시일이 지나면 폭군이 되곤했다. 영어의 폭군(tyrant)은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그 참주를 몰아내기 위해 클리스테네스가 개혁을 단행,이른바 「도편추방」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스 시민들로 하여금 참주가 될 위험성이 있는 인물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써 투표시킨 다음 6천표에 달하면 「위험인물」로 간주,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제도였다.
당시 그리스에선 파피루스종이를 이집트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종이는 귀하고 도자기가 흔했다.
이 「도편추방」제도가 실시된 것은 기원전 480년인데 독재를 막아보자는 의도는 일단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유능한 정치가를 매장하는 과를 남겼다.
오늘날 대의정치에서 행해지는 선거는 유권자들이 그들의 공복을 선출해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찍이 막스 베버가 한 말이 있다. 선거는 공복을 선출함과 동시에 유권자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권위자」(무구속적 대표자)를 선출하며,그렇게 함으로써 다수의 이름으로 선출했다는 이유로 그 대표자에게 지배의 정당성을 승인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그들의 「공복」을 뽑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지배자」를 선출한다는 갈등을 갖게 된다.
「부패한 정치는 부패한 국회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이고,부패한 국회의원을 선출한 것은 부패한 국민 탓」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좋은 정치란 국민들이 각자 자신의 한표를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달린 것이다.<손기상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