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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 옥중서한|조현경 장편소설|5공 출범기 「상처」 증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5공화국 출범 때 희생당한 개인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 두권이 잇따라 출간됐다.
이태복씨의 옥중 서한집 『세상의 문 앞에서』 (민맥간), 조현경씨의 장편소설 『12월의 여인』 (햇빛출판사간) 등이 그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세상의 문 앞에서』는 1981년 전노련 사건으로 무기형을 확정 받고 88년10월3일 가석방조치로 풀려난 이씨가 옥중에서 부모·형제·조카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었고 『12월의 여인』은 12·12사태 때 희생된 김오랑 중령의 미망인 백영옥씨의 삶과 죽음을 소설화했다.
『이제 며칠 있으면 만 7년이 된다고 생각하니 박제된 30대 장년의 삶이, 손과 발과 입이 묶인 상태에서 기회주의자들의 온갖 왜곡·날조·중상의 공격을 받고서도 변호할 수 없는 강요된 침묵의 철문이….』
이씨가 출감을 몇달 앞두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이씨는 자신의 30대 장년을 박제화시킨 전노련 사건을 중세 마녀재판에 비유한다.
중세 교권 사회 붕괴기 봉건 영주나 교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마녀를 조작, 처형한 것과 5공 출범시 「칠성판고백성사」로 불리는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에 의해 재판한 것은 둘 다 많은 사람들을 공포 분위기에 몰아넣어 잘못된 권위를 연장시키려는 수단이었다는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면벽 7년4개월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모색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그의 편지 곳곳에서 보여준다.
『객관적인 사물에 그렇게 냉철한 판단을 잘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활 논리에는 언제나 합리화하기만 한다든지, 헌신과 희생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해 관계가 있을 때만 움직인다든지,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어떤 당위론도 오불관언 한다든지…』
동생에게 보낸 이같은 서신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실천 윤리들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나를 반성하면서도 감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전망을 모색해 나가는 이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79년12월12일 특전 사령관의 부관으로 상관을 보호하다 사살된 김오랑중령. 그 충격으로 시력까지 잃은 미망인 백영옥은 남편의 명예 회복과 5공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기 위해 「12·12주역들」을 대상으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하다 91년6월28일 자신의 집에서 추락, 숨졌다.
『12월의 여인』의 작가 조현경씨는 백씨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함께 글을 썼던 문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음인지 「자신에 관한 소설을 써달라」는 백씨의 말에 따라 12·12사태 후 백씨의 삶과 심경을 소설화했다고 밝힌다.
『12월의 여인』은 특히 백씨가 신문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소송 제기에 따른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많다』고 주장했던 부분을 강조, 그 압력의 형태 등을 소설적 방법으로 재구성해 추락사를 의문으로 끌어가며 이 사건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백씨의 한 많고 의문 많은 죽음은 작가 조성기씨에 의해 작년 말 단편 『안티고네의 밤』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백씨와 국교 동창생이기도 한 조씨는 이 작품에서 군사 정권의 총알이 어떻게 중년·장년·유년을 거슬러 올라 자신을 포함, 모두에게 파고드는가를 드러내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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