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요소 만재한 야합선거법(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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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소속 후보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한 현행 국회의원선거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헌법을 경시하고 당리당략의 입법을 예사로 해온 정치세력들에 일대 경고를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소원대상이었던 무소속의 정당연설회 금지,홍보물 숫자의 차별이 위헌임을 판단하면서 선거가 국민의 것이지 집권자나 정치세력들의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가 강조하는 점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을 관객으로 하는 선거라는 경기의 선수일 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관객의 눈에 공정하게 보이는 규칙아래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를 하지않으면 경기가 시들해지고 관객이 외면할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현행 국회의원선거법은 문제투성이며 대폭 개정보완되지 않는한 소원사태가 잇따를 전망이다.
이번 헌재 심의과정에서 함께 검토된 것으로 알려진 두드러진 위헌요소조항은 제40조(포괄적 제한) 60조(개인연설금지)다. 누가 이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만 하면 위헌결정이 내려질 판이다. 이들 조항은 법앞의 평등,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등 헌법정신과 여러군데서 명백히 부닥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무소속후보 등록요건과 절차의 불평등,무소속에 대한 선거운동제한 등이 모두 정당연설회금지와 마찬가지로 불평등·불공정한 규제조항으로 지적되었다고 한다. 이는 헌법 116조의 선거기회균등 보장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다수의견이었다.
현행 선거법이 선거를 국민의 주권행사로 보기 보다는 집권의 수단으로 보아온 권위주의시대의 관행을 상당폭 답습하고 있다는 헌재의 문제인식은 당연하다고 보며,하루속히 입법당사자들의 발상전환과 법체계정비 노력이 뒤따르기를 촉구한다.
사실 우리국회·정당들의 선거법제정운용에는 문제가 많았다. 깨끗하고 자유롭게 치르는 것이 선거의 기본임을 망각한 사례,법적 진실성이나 법으로의 권위는 도외시한채 정당간 주고받기식으로 선거법이 손질되어온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그 결과 무소속 또는 약자에게는 야비하다고 할 정도로 규제가 가혹하다. 정당후보는 각종 대회·보고회·사랑방죄담회 등을 통해 은밀히 향응·금품제공까지도 할 수 있지만 무소속후보는 동창회 참석마저 못한다. 그래서 무소속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야 한다는 자조가 나올 지경이다.
이런 불공정게임은 관객(유권자)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선거와 정치를 불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것 말고도 투표의 등가성과 관계된 선거구간 인구편차 등이 앞으로 위헌시비의 대상이 될 것이다. 현재 최고 7.2대 1인 우리의 선거구간 인구편차는 독일 1.3대 1,일본 2.9대 1 보다 현격히 높다. 독일·일본이 모두 지나친 선거구간 인구편차로 인해 위헌결정을 받고 현재대로 조정된 점을 깊이 인식해 우리도 적절한 조정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또 현행선거법은 법리문제 못지않게 늘 국회임기말에 눈앞의 당리당략을 쫓아 1회용으로 후닥닥 개정되어온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번 위헌결정을 계기로 14대국회는 원구성 직후부터 충분한 시간여유를 두고 신중히 선거법을 전면 재검토해 위헌요소의 제거는 물론 지킬 수 있는 법,엄격히 집행될 수 있는 법을 만들도록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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