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전산장애 주가 왜곡의혹/올들어 9번… 사고전후 시황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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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출처 알 수 없는 루머 많아 큰 변동/폭락·폭등 잇따라 큰손 개입가능
증권전산 공동온라인망에 장애가 생기면서 주가의 흐름에 상당한 이상을 주고 있다. 전산망에 고장이 생기는 날이면 유달리 많은 풍문이 시장에 나돌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거나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증권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보지 않는다. 전산장애로 인한 「시장정보 암흑」상태에서 일부 큰손이나 특정세력들이 소문을 퍼뜨려 시장을 왜곡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전산 장애사고는 91년에 7번,올들어 벌써 9번 일어났다. 사고가 날 때마다 매번 주가가 크게 출렁거리지는 않았지만 총 16번의 사고중 7번은 주가가 장중에 10포인트 이상 큰 폭으로 움직였다.
전산사고 당일의 시장왜곡은 지난 4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날 오전장은 전날에 이어 내림세였다. 그런데 낮 12시20분 장애가 생겨 3시20분까지 매매체결이 이뤄지지 못했다.
물론 이 시간에도 주문은 이뤄졌으나 투자자들은 오후장부터 3시20분까지 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채 갑자기 시장에 나돈 증시부양설에 휘말려 올들어 거의 최저치로 떨어졌던 증권·은행주등 금융주에 「사자」주문을 내는 바람에 지수는 14.5포인트나 뛰었다.<그림참조>
하지만 이튿날 증시부양설에 대해 당국이 부인하고 나서자 11.2포인트가 하락,주가는 원위치로 돌아갔다.
지난 1월16일에는 오전 11시부터 낮 12시40분까지 전산에 이상이 있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지수 6백5선에서 맴돌던 주가가 오후들어 갑자기 장중에 20포인트나 급등했다. 종가는 5.5포인트 오르는 선에서 마감됐지만 이날 시장에는 금리인하설,남북정상회담 조기개최설,기름값 인하설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여러가지 호재성 소문이 나돌아 주가를 부추겼다.
물론 우연의 일치로 고약한 일이 벌어진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19일과 22일은 소련에 쿠데타가 일어나고 실패했던 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시각각 긴박한 상황에 따라 주가가 변할 판인데,하필이면 19일에는 오전 8시부터 10시25분까지,22일에는 9시39분부터 11시까지 고장이 났다.
8월19일의 전산망 고장은 오전장 시작을 한시간 늦췄다. 오전까지 보합세를 보이던 주가는 낮 12시쯤 고르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무려 29.33포인트나 폭락했다. 오전에 「팔자」주문을 냈다가 전산사고로 미처 팔지 못한 투자자들은 오후들어 주가가 폭락하자 거센 항의소동을 벌였다.
쿠데타의 실패와 고르비의 복귀소식을 밤새 전해들은 투자자들은 8월22일 오전 동시호가의 시세를 흥분속에 기다리며 다음 투자를 계획했으나 매매체결이 늦어지는 바람에 주문도 못내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주가는 26.89포인트나 급등했다.
이처럼 전산장애와 함께 주가가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일이 잦자 증권가에는 한때 「장애도중 주가조작설」까지 나돌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장애가 생긴 시간동안 일반투자자들에게 시장정보가 막히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틈을 이용,일부 세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루머를 퍼뜨려 주가를 왜곡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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