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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시카고 프리츠커 파빌리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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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시민들은 매년 여름 주말 저녁이면 간이 테이블과 의자에 도시락을 챙겨들고 그랜트 파크로 간다. 오후 6시30분에 시작하는 그랜트 파크 음악제를 보기 위해서다. 미국 자치시의 재정 지원으로 야외에서 무료로 열리는 클래식 음악제로는 유일한 페스티벌이다. 1935년 경제 대공황으로 실의에 빠진 시민들에게 음악으로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작했다. 1943년에는 아예 그랜트 파크 오케스트라가 창단됐고 1962년에는 100명 규모의 그랜트 파크 합창단이 출범했다.

2004년 7월 16일에 막이 오른 그랜트 파크 음악제는 어느해보다 축제 분위기였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새 야외음악당에서 훌륭한 연주를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까지만 해도 그랜트 파크 음악제는 1978년부터 임시 무대로 쓰기 시작한 '페트릴로 뮤직 셸'에서 연주해왔다. 1977년 시카고의 4개 시민단체에서 미시간 호수 주변에 공연예술을 위한 공원 신축을 제안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페트릴로 뮤직 셸이라는 절충안이 채택된 것이다. 시카고 음악가연맹 회장을 지낸 제임스 페트릴로의 이름을 딴 야외 음악당이다. 페트릴로는 시민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무료로 들려주는 한편 라디오.영화에서 생음악 대신 음반을 틀면서 일자리를 잃은 음악가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이 음악제를 시작했다. 지금도 매년 불꽃놀이를 곁들인 미국 독립기념일 전야 음악회는 이곳에서 한다.

야외 음악회라고 해서 임시 가설 텐트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빌바오 구겐하임과 LA 디즈니홀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야외음악당'프리츠커 파빌리언'은 그 자체가 거대한 조각품이다. 높이 35.5m의 무대는 오케스트라.합창단 등 2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고정석(4000석) 위에 지붕만 덮는다면 영락 없는 심포니 전용홀이다. 1만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6030만달러(약 600억원)짜리 상설 야외음악당이 탄생한 것이다.

매년 여름 시민 위한 무료 야외음악제 열려

잔디석(7000석) 위엔 52대의 스피커가 분산돼 격자 모양의 철제 빔에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다. 객석 어디에 앉든지 동시에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컴퓨터 제어 음향 시스템이다. 음향 공사에만 300만 달러(약 28억원)가 소요됐다. 시카고 출신의 건축 애호가이자 하얏트 호텔 체인 창립자인 제이 프리츠커는 총공사비 중 30%에 달하는 1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제이 프리츠커는 아내 신디 프리츠커와 함께 197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제정했다. 프랭크 게리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출신이다.

프리츠커 파빌리언이 들어서 있는 밀레니엄 파크는 글자 그대로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1893년 콜럼부스 박람회 이후 시카고에서 펼쳐진 최대 규모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다. 하지만 예정보다 4년 늦게 개장했다. 총공사비가 당초 예산의 세 배인 4억7500만달러(약 4500억원)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초 6500㎡였던 공원 조성계획은 1만㎡로 늘어났다. 스페인 조각가 호메 플렌사가 만든 쌍둥이 타워 분수대'크라운 파운틴', 런던 하이드 파크의 다이애나 왕세자비 추모 정원으로 유명한 캐스린 구스탑슨(Kathryn Gustafson)이 설계한 정원, 인도 조각가 아니리 카푸어(Anish Kapoor)의 125t짜리 철제 조각품'클라우드 게이트'가 방문객을 맞는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별명은 '시카고 빈(Chicago Bean)'. 거대한 땅콩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거대한 타원형 철조물인 그의 작품은 시카고의 스카이 라인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플렌사의 분수는 탑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그 중간에 놓인 직사각형 풀로 물이 떨어진다. 탑의 안쪽 전면에는 LED(발광다이오드)스크린이 설치돼 시카고 시민 수백명의 얼굴을 비춰준다.

아이스링크는 따뜻한 봄.여름.가을에는 150석짜리 야외 카페로 변신한다. 지하에는 공원 지하에는 보행자용 레일과 2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주차장, 공중 화장실을 마련했다.

공원 북쪽에는 2003년 11월 음악.무용 공연장 해리스 시어터(1500석)도 문을 열었다. 시카고의 새 명물로 떠오른 밀레니엄 파크는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문화공원이다. 스케이트 보드나 소프트볼 경기를 금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밀레니엄 파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옥상 공원이다. 철로와 주차장을 온통 콘크리트로 뒤덮은 다음 그 위에 잔디를 심었다. 1851년부터 뉴올리언즈행 기차가 출발하는 일리노이 센트럴(IC) 철도 소유의 부지로 남아있다. 미국 중부 지역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철도 노선이다.

시카고 도시 계획의 화려한 피날레

1909년 미국 건축가 대니얼 번햄(Daniel Burnham. 1846-1912)는 시카고 도심을 정비하기 위한 도시 계획을 3년에 걸쳐 완성했다. 미시간 호수 주변을 정비하고 모든 시민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주차장을 마련하는 게 골자였다. 1917년 미시간 호수 주변의 평지에 대규모 공원인 그랜트 파크(Grant Park)를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철로와 지상 주차장으로 남아 있는 IC 시카고 역 부지만 남겨 놓고 그 주변을 공원으로 개발했다. 그랜트 파크가 완공된 후에도 철도 부지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흉칙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997년 시카고 시장 리처드 데일리는 철로와 노상 주차장 위를 뒤덮은 다음 음악 연주공간을 마련하는 계획에 착수했다. 1909년 시카고 도시 계획 때 철도 부지라는 이유로 손을 대지 못했던 곳을 과감하게 옥상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밀레니엄 파크가 시카고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면서 주변 지역의 부동산 시세가 크게 올랐다. 한때는 시카고 시장이 그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포브스 지의 2005년 집계에 따르면 부동산 매매 평균 가격은 71만 달러(약 7억원)이었다.

◆공식 명칭: Jay Pritzker Pavilion

◆개관: 2004년 7월 16일

◆홈페이지: www.millenniumpark.org

◆건축가: 프랭크 게리 Frank Gehry

◆음향 컨설턴트: Talaske Group (시카고)

◆객석수: 고정석 4000석, 잔디석 7000석

◆소유주: 시카고 시

◆안내 정보(Welcom Center): 201 E. Randolph Street in the Northwest Exelon Pavilion

◆개방 시간: 오전 6시~오후 11시(무료)

◆상주단체: Grant Park Music Festival(www.grantparkmusicfestival.com)

◆부대시설: 레스토랑'파크 그릴'(300석)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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