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한독약품 - 속, 시원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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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의 '국민 소화제'하면 단연 한독약품 '훼스탈'이 꼽힌다. 훼스탈은 1958년 출시 후 50년 가까이 무려 30억 정이 팔렸다. 지난해 소화제 시장 점유율은 35%, 104억원어치에 달한다. 이 금액은 지난해 한독약품 전체 매출(2407억원)의 4%에 불과하지만, 훼스탈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이 회사 매출의 30%를 담당할 만큼 효자상품이었다.

훼스탈로 잘 알려진 한독약품은 유독 최초.최고(最古)의 수식어가 많은 기업이다.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외국기업과 기술제휴를 했고, 제약업계 최초의 합작 기업으로 해외 파트너사와 최장기 합작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국내 합작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기업공개를 했고, 54년 창업 이래 한 해도 빠짐없이 흑자 경영을 해왔다. 1988년 회사 상황이 좋지못해 순이익이 1억3000만원에 그쳤을 때도 예외없이 주주배당을 했다. 주주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종업원의 신뢰 또한 두터워서 창사 이래 지금까지 무분규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한독약품의 역사는 합작과 신뢰로 이루어져 있다. 한독약품의 모태였던 '연합약품'도 김신권 현 명예회장 등 7명이 동업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경영을 맡았던 김 명예회장은 57년 독일 훽스트사를 방문해 기술제휴계약을 체결했다. 훼스탈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64년부터 훽스트사는 합작파트너가 됐다. 2세 경영인인 김영진 한독약품 현 회장은 "당시 기술력이 없는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보다 큰 만족을 주는 방법은 기술제휴뿐이었다"며 "독일 훽스트도 우리를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2세 경영인으로 합류한다고 했을 때 훽스트는 84년부터 3년간 김 회장에게 독일 본사에서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을 정도다. 합작 파트너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훽스트사와 합작 관계는 99년부터 변모를 겪었다. 훽스트가 롱프랑로라를 인수하고 이름이 아벤티스로 바뀌었고, 2005년 아벤티스가 사노피-신데라보에 인수를 당하면서 합작파트너가 세계 2위의 제약회사인 사노피-아벤티스로 바뀌었다. 사노피-아벤티스는 군더더기를 털어내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고, 한독약품도 긴장해야 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쌓인 신뢰가 없었다면 합작은 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노피-아벤티스로 바뀌면서 충격이 컸다"며 "지금까지 독일 사람들을 상대해오다 프랑스 사람들로 바뀐 만큼 음식과 문화가 확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러나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게임을 하면 상대방도 신뢰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신뢰경영은 의주 만상의 정신을 계승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명예회장은 의주 상인의 아들로, 한국 교회 최초로 세례를 받은 백홍준이 김 명예회장의 외조부이다. 김 명예회장은 해방 전 중국 단둥에서 약방을, 6.25 이후에는 부산국제시장에서 약품상을 운영했다. 신뢰에 바탕을 둔 동업과 합작, 연속흑자경영 등 일련의 경영활동이 만상의 정신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길을 걸어온 한독약품은 지난해부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새 파트너 회사가 김 회장의 역량을 믿고 이제는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독자경영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2005년에 비해 2.7% 밖에 안 올랐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18% 성장한 2830억원을 매출 목표로 잡고 있다. 주력시장인 당뇨병 및 고혈압 치료제 시장에서 매출 증대를 노리고 있다.

한독약품은 오랜 역사와 함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박물관 및 전문박물관인 한독의약박물관은 보물 6점을 포함해 총 1만여 점의 소중한 의약사료를 전시 보관하고 있다. 한독약품은 지난해 한독의약박물관을 독립법인화해 '한독제석재단'으로 확대했다. 김신권 명예회장의 아호를 땄다. 이 재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을 다양하게 펼칠 계획이다.

글=심재우 기자<jwshi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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