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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연금 폭탄 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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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08년부터 (노후연금) 지출이 급증해 국가 전체가 재정위기에 봉착할 것이다."(2001년 국정감사)

"고령화로 재정 고갈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앞당겨지기 때문에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2002년 국감)

"사용자나 노동자.시민단체 어느 누구도 찬성하지 않는데 왜 강행하려 하느냐."(2003년 11월 국회 상임위)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위원장 이원형(한나라당)의원은 국민연금 제도 개선에 대해 이렇게 입장을 바꿨다. 같은 당 남경필.윤여준 의원 등도 연금 제도 개선을 촉구하다 막상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나오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지위 소속 나머지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연금법 개정안은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좌초 위기에 놓였다.

개정안은 보험료는 올리고 노후 연금액은 줄이자는 게 골자다. 지금처럼 적게 내고 많이 받도록 하면 재정이 거덜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복지위 의원들은 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속으론 그렇지 않다. 내년 총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년여간의 토론 끝에 마련된 개혁안을 이날 법안심사위에서 심의조차 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다. 이들뿐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선후보 TV토론 때 "연금을 깎으면 연금 제도는 '용돈'제도가 된다"고 한 뒤 연금을 깎는 개정안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인기정책과 정치권의 보신주의 때문에 국민연금을 제대로 손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1998년에도 그랬다.

인기 없는 정책이란 이유로 '폭탄 돌리기'식으로 미루면 부실만 키울 뿐이다. 그 부담은 후세대로 전가된다. 이번에도 대충 넘어가면 그들은 책임자를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신성식 정책기획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