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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리스트|훈련 힘겹지만 하남만 따면 "입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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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스포츠 공화국으로까지 불리던 5공화국을 거치면서 스포츠 스타들은 명예에다 부마저 움켜쥐게 됐다. 당시 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경우 지금도 그렇지만 대통령의 축전이 꼭 따르고 귀국해서부터 주인공은 청와대는 물론 직장·학교·고향 등지에서 환영과 함께 축승금까지 받곤 했다. 여기에다 정부에선 75년부터 「경기력 향상 연구연금」 이란 명목으로 국제대회 메달리스트들에게 메리트를 주어오고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매월 60만원씩 평생 연금을 지급 받게 된다.
겨울스포츠 사상 첫 올림픽2관 왕이 된 「알베르빌의 영웅」김기훈(25·단국대 대학원)은 매월 1백95만원의 엄청난 연금을 받게돼 평생 큰 회사 중역자리가 보장된 셈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마추어 스포츠의 최고봉으로서 명예만 고이 간직하던 시대는 사라지고 이젠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약속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독일·프랑스·일본등 선진국들도 이번 알베르빌 올림픽을 계기로 메달리스트들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주는 등 한국형을 따라오고 있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든지「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등의 순수 아마추어리즘은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끝으로 퇴색하고 80년대 접어들면서 세계스포츠계는 황금의 지배아래 더욱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자본주의발달에 따른 금전만능의 풍조도 한몫 했지만 지난 80년IOC위원 장이 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개인성향과 상업올림픽의 효시가 된 LA올림픽이 기폭제가 됐다는 점은 부인키 어렵다.
한국은 지난 75년 연금 제가 시행된 이후 수백 명의 스포츠 스타가 혜택을 보고 있으며 이중 올림픽 메달리스트만도 1백52명, 금메달리스트도 38명(단체 구기종목포함)이나 된다.
국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특징은 유달리 가난을 배경으로 이에 굴하지 않고 일어선 헝그리 스포츠맨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현역에서는. 은퇴했지만 안정된 직장과·매월 지급되는 연금 등으로 중류이상의 풍족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84년 LA올림픽유도 하프 헤비급의 우승자 하형주. 금메달 확정직후 고향(부산)의 어머니와 국제통화에서 『어무이, 이제 고생 다했습니더』라는 일성으로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하형주는 이제는 대학원까지 마치고 모교인 동아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후배들을 길러내고 있다.
하형주는 국민학교 4학년 때 아버지(당시40세)를 잃었다. 이후 어머니는 혼자 담배 가게를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 2남2녀를 길러냈던 것. 당시 하의 어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 시집간 큰딸 외숙씨(당시32세)집에 기거하며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던 터여서 하형주의 금메달 소식은 가뭄의 단비 이상이었을 것이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2kg급 금메달리스트 김원기(32)도 금메달 하나로 집안 전체가 일어선 케이스다.
김은 결승전에 오를 때까지도 금메달은 물론 메달 유망주로도 꼽히지 않았던 인물.
따라서 김의 금메달은 더욱 감격적이었고 고향 함평에서 농사를 짓던 홀어머니는 너무 기뻐 실신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김원기는 이제 현역을 떠나 소속팀이던 삼성생명에서 현업에 정통한 보험맨으로 변해 있다.
직원36명을 거느린 제주영업소 소장으로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구가하고 있으며 삼성생명에서 주는 소장 월급 외에 올림픽 금메달 연금1백20만원(레슬링협회 지원금 60만원 포함) 을 포함, 매월 2백만원 내외를 받고있다.
LA올림픽 레슬링과 유도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안겨준 유인탁(자유형 68kg급)과 안병근 (라이트급)도 금메달 하나로 입신한 경우. 유인탁은 준결승에서 극심한 허리부상으로 중도기권의 위기에까지 몰렸으나 『금메달을 못 따면 4년간 동거해온 애인과 결혼식을 못 올린다』며 투혼을 불살라 결승에서 미국선수에게 우세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인탁은 결승전이 끝난 후 허리통증에 울부짖으며 시상식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TV를 지켜보던 전국민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유는 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지난 78년에는 아버지까지 여의었으나 오로지 뼈를 깎는 훈련으로 금메달의 영예를 안은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다. 현재 유는 주택공사의 코치(과장급) 로 레슬링협회 자체연금 등 1백20만원의 연금과 월급 등 2백20여만원의 수입으로 부인과 함께 청담동의 빌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안병근도 가난과 병마를 딛고 일어선 대표적인 인물.
생후 10개월만에 어머니를 잃어 엄마 얼굴도 모른 채 할머니 품에서 자란 안은 올림픽 직전 간염까지 걸려 선수생활 포기의 절박한 상황에까지 몰렸으나 역시 불굴의 정신력으로 투병생활과 훈련을 성실히 소화, 대망의 금메달을 따냈다.
안병근은 현재 대한유도회에서 지급하는 자체연금 24만원과 대한체육과학대 조교수 월급, 국민 체육진흥공단의 연금 80만원, 대표팀 코치수당 80여만원 등을 매월 지급 받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학교 교사를 아내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재엽(60kg급)은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커플.
동성동본의 벽을 뚫고 역시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핸드볼의 김경순양과 지난 89년3월 결혼식을 올리고 상계동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이들의 수입도 최고액에 속하는 편. 명세서를 보면 남편 김재엽의 월 연금 액이 95만원, 대표팀 트레이너수당 월51만원, 소속팀인 쌍용양회에서 받는 월급, 여기에 부인의 연금 75만원이 추가되면 월수입 3백여만원으로. 사장급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또 서울올림픽 2관 왕인 「신궁」김수영(고려대3년)은 여자선수론 최고인 월 1백10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는데 오는 7월 바르셀로나 여름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기대되어 또 다시 최고액 연금 자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위 올림픽금메달이 탄생시킨 신흥 스포츠 부자집단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 하다.
해발 후 처음으로 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에서 금메달 획득으로 국민적 영웅으로 환영을 받았던 양정모(자유형 페더급·41)씨는 조폐공사감독(과장급)으로 후진 양성에 나서고 있고 LA금메달리스트인 복싱 미들급의 신준섭은 올림픽 후 아마생활을 청산하고 원광대· 대학원을 거쳐 지금은 모교에서 전임을 맡아 강의도 하며 저녁에는 시내체육관에서 복싱 꿈나무들도 지도한다.
또 양궁의 서향순은 이대를 졸업한 후 태릉선수촌에서 사귄 유도선수 출신의 박경호씨 (서울 아시안게임 금·현 체과대 조교)와 90년 결혼 충주의 시댁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산다.
그렇지만 금메달리스트로서의 명예는 이 같은 물질적 혜택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에피소드는 금메달의 위력을 단적으로 나타낸 얘기다.
일제하 베를린 올림픽(36)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씨는 3공화국시절 어느 날 사적인 일로 서슬이 시퍼런 국방부를 방문했었다. 그러나 마침 주민등록증을 갖고있지 않아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이때 돌연 위병이 거수경례를 붙이면서 『손 선생님 아니십니까? 어서 들어가십시오』라고 통과시켜주더란 것이다.
그러나 이들 올림픽스타들의 부와 영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한창나이(20세미만)에 2∼3년 이상씩 반 감옥살이로 불리는 태릉선수촌 합숙훈련을 견뎌야 했으며 끝없이 대표자리를 위협해 온 라이벌의 도전을 물리쳐야했다.
레슬링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한명우(36)는 LA올림픽파견 대표선발전에서 탈락, 은퇴가 불가피한 선수로 낙인찍혔었다.
김원기·유인탁 등 동료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하는 동안 한은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취직자리까지 걱정해야하는 딱한 신세가 됐다.
한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내며 홀로 피나는 훈련을 거듭, 4년 후 홈매트인 서울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금메달을 일구어내고 말았다. 이 같은 정신적 갈등은 메달리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극복해야하는 과제다.
수많은 예비스타들이 1년에 2백일이상 합숙훈련의 지루함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퇴촌 하거나 쫓겨나 기회를 놓친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적 갈등 못지 않게 육체적 한계를 견뎌내지 못한 케이스도 부지기수다.
하루 8∼10시간 훈련을 마치고도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에 신경을 써야하는 체급 선수들, 남자선수들과 똑같은 체력훈련을 받아낸 여자선수들 모두 인간승리의 드라마인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최근 「경기력 향상 연구기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높아지고 있다. 나이 어린 학생으로 고액의 연금을 받게돼 오히려 경기력을 퇴화시키고 조기 은퇴하는 역현상이 나타나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금의 지급시기 및 액수조정 등을 검토할 시점에 와있다는 주장들이다. 특히 보훈처에서 상이용사들에게 지급하는 연금(1∼6급·1백6만6천∼25만원)과 비교 할 때 「경기력 향상기금」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척도 나오고 있다. 원래 아마스포츠란 「여가를 즐기면서 건강증진도 도모하는 놀이」인데 이같이 명예에다 엄청난 부까지 약속하고 있어 아이로니컬 하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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