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 한번 더 …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2기 임기를 1년여 남겨 놓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3기 연임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자국 내에서 높아지고 있다. 개방 이후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강한 러시아' 부활의 기틀을 마련한 뛰어난 지도자가 3기 연임을 금한 헌법 조항 때문에 물러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초헌법적'인 여론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해서라도 푸틴에게 3선의 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주장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야권의 대표적 대선 후보로 꼽히는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총리는 7일 "개헌 확률이 50%를 넘어서고 있다"며 이 같은 움직임에 경고음을 울렸지만 여론은 찬성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 뜨거운 개헌론=푸틴 대통령이 수차례 '개헌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3기 연임 논의에 또다시 불을 지핀 것은 세르게이 미로노프 상원의장이다. 미로노프는 지난달 30일 상원의장에 3기째 선출된 직후 수락 연설을 하면서 "러시아처럼 큰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에게 4년 임기는 너무 짧다"며 "5년 또는 7년으로 대통령 임기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시에 대통령의 3기 연임을 금지한 헌법 조항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15년째 모스크바 시장직을 맡고 있는 유리 루슈코프가 곧바로 상원의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루슈코프는 3일 "어떤 지도자가 훌륭하게 일했다면 굳이 바꿀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가 서열 3위의 상원의장과 정치적 비중이 큰 모스크바 시장의 제안에 다른 정치인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호응하고 나섰다. 안드레이 사모신 하원 의원은 6일 "모든 국민이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한 푸틴이 계속 대통령직을 맡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헌법 조항만을 따지는 것은 지나친 형식주의"라고 주장했다. 모스크바 인근 툴라주의 뱌체슬라프 두드카 주지사도 "현재 러시아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국내 다른 정치인 모두의 지지도를 합친 것보다 높다"며 개헌을 지지했다.

◆ 숨죽인 반대론=물론 반대 여론도 있다. 야당인 '국민-민주당'을 이끄는 카시야노프 전 총리는 "친 크렘린계 정치인들이 푸틴의 임기 연장에 대한 지지 여론을 확산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는 "지금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에 대한 그의 책임을 추궁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 묻혀 이 같은 목소리는 거의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임기를 1년여 남겨 둔 지금까지도 푸틴의 지지도는 여전히 70%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카리스마적 통치 스타일에 고유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달러로 6~7%대의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경제 호황이 그의 인기를 떠받드는 무기다.

유철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