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문화읽기] 화가의 病 그림보면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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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모네(1840~1926)는 1912년 72세의 나이에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백내장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병이기 때문에 모네는 진단받기 훨씬 전부터 백내장을 앓아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그의 그림에는 세부 묘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물체가 흐릿하게 표현돼 있으며, 노란 색채가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대사장애를 일으키면서 투과성이 떨어져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병인데, 백내장 환자들은 노란색은 잘 보지만 파란색 계열은 잘 보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모네는 시력을 거의 잃어 맹인에 가깝게 되자, 1923년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는 다시 파란색과 보라색을 볼 수 있게 됐다. 모네는 세상을 떠나기 전 4년 동안 그의 최고 작품으로 평가되는 연작 '수련'을 완성했다. 그 작품 속에는 은은하면서도 생기 있게 빛나는 푸른색과 연보라색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미국에는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분석해 화가의 병명을 밝히고 병의 진행상황을 연구하는 의사들의 모임이 있다. 미술을 매우 좋아하는 의사들이 만든 이 모임은 화가의 그림 분석을 통해 질병의 역사도 탐구하고 화가의 작품 세계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을 유혹하는 것은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 '지적 오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리라.

고흐의 삶과 작품을 분석해 그가 앓았던 질병을 연구하는 클럽도 있고, 고야의 작품에 나타난 편집광적 묘사나 정서적 불안정을 심리분석하는 의사들의 모임도 있다.

의사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화가의 병을 밝히려고 애쓰는 일은 무모해 보이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나탈리 엔지어는 그의 저서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해나무, 2003)에서 의사들의 이러한 시도가 화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나는 의사들의 이런 지적 취미활동이 때로는 우리에게 화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의 작품을 좀더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는다. 위대한 화가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과 격렬한 감정의 굴곡을 작품에 온전히 뿜어낸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몸과 정신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에 다가가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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