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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칼럼

황사, 조선,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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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25년 전 그날도 그랬다. 고종 19년(1882년) 4월 6일 조선 전권대사 신헌과 미국 전권대신 슈펠트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려고 제물포 화도진에서 마주 앉았다. 그때 한양에 진주한 일군과 청군은 '연미국(聯美國)'이라는 고종의 신외교전략에 신경이 사나워져 일촉즉발의 긴장감으로 대치했다. 신헌과 슈펠트가 한문과 영문으로 작성된 조약문을 최종 점검하던 시간에 흙비가 내렸을 거라는 추측은 당시 유례 없이 자주 거론된 기우제 때문이다. 고종은 임오년 봄이 오자 열 차례나 넘게 기우제를 올렸으며, 급기야 인정전과 사직단에 나가 특별 기우제를 지냈다. 6월 11일 "드디어 비가 내렸다"(고종실록). 예나 지금이나 조미수약(朝美修約)은 토우(土雨)와 함께 이웃 국가들의 극심한 경계심을 몰고 오는 듯하다.

고종의 '연미국'은 조선의 시장가치를 과대평가한 미국을 불러들여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균세(均勢)'를 겨냥했다. 조약문은 수출입 품목별로 세세한 관세율을 정하고는 있으나(제5조), 일본.중국과의 무역량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조선이 서방 국가와 최초로 맺은 이 조약은 선언적 의미로 끝났다. 이에 비하면 지금의 한.미 FTA는 정치.경제에 두루 걸치는 이중적 균세 전략이자 국내에 미치는 충격파도 메가톤급이다.

미국은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보강해줄 가장 극성스러운 파트너를 얻었고,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한 한국은 헤비급 경제국가로 격상할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과의 시장 통합은 우리의 오랜 골칫거리인 '샌드위치 함정'을 탈출시켜줄 경제적 균세 전략이다. "임금이 저렴한 중국 노동자와 공장공업이 발달한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 조선의 산업상태"라는 이 샌드위치론은 이미 1925년 신문 사설에도 자주 오르내렸는데, 한.미 FTA는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거대한 중국과 강력한 일본의 이항대립을 패자 없는 순환구조로 바꾸는 경제적 균세의 중대한 계기다.

통상이 얽히면 정치가 얽힌다. 자본.기술.지식이 섞이면 정치적 이해의 공유면적이 넓어진다는 것은 세계화 시대의 상식이다. 그것은 통상 파트너가 보장해주는 일종의 정치적 보험과 같아서 강대국들의 입김이 엇갈리는 동북아에서 한국은 더 힘을 받을 터다. 그러면 고종이 그토록 갈망하던 '정치적 균세'의 현대용어인 '균형자 한국'이 실제화될 수 있다.

그러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환영 여론에 파묻혀 기세가 꺾인 '시기상조론'과 '불가론'을 담론의 중앙무대로 초청해야 할 시점이다. 자유무역은 항상 시장의 약자에게 가혹하고, 한 나라의 혼과 제도를 대책 없이 바꾸도록 강요한다. 낙관론자의 막연한 희망 사고로 이런 경계론을 배척할 때 개방의 찬가는 종속의 신음으로 바뀔 것이다. 상대가 세계 최강국 미국이기에 단기적으로는 모든 부문이 요동치고, 수혜와 피해, 찬반 여부에 따라 사회가 쪼개질 우려가 많다. 마치 고종의 '연미국'이 개화파의 사분오열과 임오군란으로 좌절되었듯 내부의 정치균열은 호기를 악연으로 바꿔 버린다. 그러므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외쳤던 그 말, "We have a deal(합의되었어!)"은 이제 내부 협상이 시작되었고, 그것도 고사가 예정된 약자와 희생자의 관점에 설 것을 명하는 신호다. 그럼에도 일단은 '뚝심 대통령' 노무현이 '불운한 황제' 고종의 125년 묵은 한을 풀어주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