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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난과의 전쟁"|베트남 「제3의 해방」 몸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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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베트남은 「제3의 해방」을 위해 전국민이 바쁘게 뛰고 있다.
프랑스·미국 등 외세를 두차례에 걸쳐 물리친 베트남 국민들은 연간 국민 소득 2백 달러라는 빈곤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하노이의 사회주의 정부는 이를 「개혁」이라 부르고 있으며 인구 6천7백만명의 베트남 국민들은 이를 「총칼 없는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같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베트남 정부와 국민은 함께 바쁘다.
이 제3의 해방 전쟁을 위해 사회주의 정부는 「사회주의 우월」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자존심을 과감히 버리고 있으며 국민들은 「사회주의의 적」 자본주의를 공공연히 『좋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은 「시장 경제」이며 「자유 경제」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회주의 세계에서 용납되지 않던 새로운 체제가 『굳이 자본주의라고 말해야 한다면 부인하지 않겠다』는 것도 오늘날의 베트남이다.
베트남의 새로운 전쟁은 매일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수도 하노이와 베트남 최대 도시 호치민시는 오전 6시가 되면 거리가 자전거와 모터사이클로 가득 메워진다.
하노이 중심부에 위치한 봉가이가는 급류처럼 흐르는 자전거·모터사이클 흐름 속에 길 양쪽 가게들은 이미 문을 열기 시작한다.
호치민시 중심가 구엔후에가에 인접한 후인툭캉·호퉁마우가의 상가 지대도 오전 6시30분이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연다.
하노이의 새벽거리는 또다른 행상들로 아침 시간이 바쁘다.
빵 서너개가 담긴 소쿠리를 든 10대 소녀가 『더운 빵』을 외치며 종종 걸음으로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베트남 전통 막대기 지게에 매달린 소쿠리에 국수를 담아 행상을 하는 키 1백40㎝ 가량의 중년 여인은 차고 새벽 습기가 밴 거리를 맨발인 채로 달리듯 고객을 찾아 헤맸다.
하노이와 호치민시의 새벽은 이처럼 「파는 사람」들로 붐빈다.
베트남에서 만난 지식인·공무원·언론인들은 이같은 「파는 사람 위주의 시장」을 베트남의 「개혁 덕분」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86년 통일 10주년을 맞아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한 경제 개혁을 선언했다.
호치민시의 국영기업체 직원인 트란 구엔 구엔씨는 이를 『베트남의 제3의 해방을 위한 첫 조치』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은 1954년 디엔비엔 푸 전투에서 프랑스를 물리치고 제1의 해방을 맞았으며 75년 사이공 (호치민시의 당시 이름) 함락으로 미국의 개입을 물리치고 통일, 제2의 해방을 얻었다.
베트남인들은 이 두차례의 해방을 항상 자부심에 가득찬 어조로 자랑스럽게 말한다.
하노이 정부는 사회주의의 국가 계획 경제가 일반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하지 못하고 국가 역시 재정난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음을 시인, 경제 대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노이 정부의 개혁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사유재산권 인정 ▲외국 투자법 제정 등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정부가 사회주의식 중앙 통제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그 여파는 곧장 국민들의 민감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정부의 임금·가격 통제에서 벗어나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하노이의 베트남 청년 동맹 국제국 간부 트란 호아이 남씨 (40)는 『정부가 개혁 정책을 발표하자 전국민이 장사꾼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개혁 정책 도입 후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베트남 국내건 국외건 필요한 물건을 자유롭게 구입, 수입할 수 있게 되고 이를 「자기가 팔고 싶은 가격」에 팔기 시작했다.
이같은 변화로 정부가 공급하는 질 낮은 상품을 정부 통제 가격으로 마지못해 구입하던 소비자들은 질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게 되자 국영 상점을 기피하게 되고 개인 상점으로 몰렸다.
하노이와 호치민시에서는 따라서 국영 상점 숫자가 날로 줄어들고 있다.
트란 호아이 남씨는 『하노이에서 문을 열고 있는 상점의 90%이상은 개인 상점』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최대 시장인 항다 시장 부근에서 외제품 가게를 하는 당 홍 투안씨 (39)는 전에는 마음대로 팔 수 없던 밀수된 외제품을 이젠 마음대로 팔 수 있게 돼 안심하고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제 경쟁자가 너무 많이 나타나 요즘은 장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는 가게를 하면 공무원 평균 봉급 12만동 (8천원) 보다 4배가 넘는 최소한 50만 동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하고 『수입이 좋은데 누가 장사를 시작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노이와 호치민시의 「파는 사람」만 붐비는 새벽 상가는 낮이 돼도 사는 사람이 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가격과 질에서 일반 개인 상점보다 불리한 국영 상점은 거의 하루종일 고객 없이 파리만 날리는 경우가 많다.
하노이 중심가 대형 상점이 몰려있는 카이 트랑 티엔 거리에 있는 국영 백화점 박호아 통헙 (백화종합=종합 백화점)은 대낮에도 점원 수와 고객수가 비슷할 정도로 한산했다.
베트남 통일의 지도자로 추앙 받는 인물중의 한 사람인 트란 박 당씨는 『베트남은 높은 실업률 (20%), 낮은 소득 (연간 1인당 GNP 2백 달러)으로 아직 구매력이 낮다』고 시인했다.
한 지식인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같은 비정상적 시장 형태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 정부와 국민의 의지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해방을 위한 전쟁은 이제 국민 서로간의 싸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모두가 장사꾼이 되면서 파는 사람은 다른 파는 사람과 경쟁하게 됐다. 이것은 빈곤에서 해방을 가져다주기 보다 17년 전에 끝난 동족간 전쟁을 다시 가져다주었다.』
「이같은 총칼 없는 전쟁」 속의 전사들은 전의에 가득차 있다. 하노이의 국영 백화점 박호아통헙 정문 앞 노상에서는 소쿠리에 과일을 담은 한 노점상 여인이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인도와 차도 사이에 주저앉았다.
그 여자는 5m 앞에 놓인 그녀의 괴일 소쿠리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채 얼른 아래 속옷을 내리고 수많은 자전거·모터사이클·행인, 심지어 정복한 경찰이 지켜보는데서 급한 용무를 보기 시작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시의 가장 중심부인 네거리에서 발생한 이 해프닝은 노점상 여인의 단순한 만용이라고 보기엔 그녀의 태도가 너무나 진지했다.
소쿠리 장사이긴 하지만 그녀의 여자로서의 수치심이나 체면보다도 사업 밑천이 더 중요하다는 의식이 오늘날 베트남 사회의 한 단면을 절실히 설명하고 있었다. 호치민=진창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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