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농업사 집대성|연대 김용섭 교수 30년 연구 저서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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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농민과 농업의 역사를 통해 한국사를 재구성해온 농업사의 대가 김용섭 교수 (연세대)가 근대에 이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농업사 연구를 일단락 짓는 저서 『한국 근현대 농업사 연구』 (일조각간)를 내놓아 학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근 출간된 『한국 근현대 농업사 연구』는 「한말·일제하 지주제와 농업 문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농업사 연구를 개척해온 김 교수가 30여년의 오랜 연구 끝에 현대사까지 정리한 것이다.
농업사 연구는 산업화 이전 우리 역사가 결국은 모두 농민이 주체가 된 역사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 연구 분야로 인정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사 연구는 절대적인 자료 부족으로 연구가 부족했는데 김 교수가 이 분야를 독보적으로 체계화해와 연구 성과를 내 놓을 때마다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60년 『양안 (토지 대장) 연구』 이후 70년『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 1, 2 』, 75년 『한국 근대 농업사 연구』 등을 통해 농촌 경제와 농업 변동·사회 변동·농학사·농지제·농민 항쟁 등 농업사와 전 분야를 정리해 주목받았으며 이후에도 『조선후기 농학사 연구』 등 저서와 계속되는 증보판을 통해 이론을 체계화했다.
이번에 출간된 저서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지극히 다루기 힘든 현대사를 매우 실증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개항 이후 일제하까지의 농업사를 당시 대표적인 대지주의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사례는 당대의 거부였던 강화 김씨, 나주 이씨, 고부 김씨 가와 일제의 대표적 식민 농업 통치 기구인 동양척식회사·조선신탁회사 등 다섯 가지다. 이같은 사례 연구는 해당 가문의 후손들이 생존해 있는 현실에서 민감한 이해가 얽힌 문제이기에 연구의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또한 농업사 연구에서 농민의 생활상, 나아가 농민의 주체적인 활동인 농민 운동, 이와 연관된 농민 운동 이론 등을 다루지 않을 수 없기에 현대 농업 연구에서는 당연히 농업 개혁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의 냉전적 분위기에서 이같은 연구가 발표되기 힘들었던 것도 학계의 어려운 현실이었다.
이번 저서도 이같은 어려움 때문에 출간이 미루어져 오다 10여년만에 빛을 보게된 것이다. 김 교수는 서문에서 이와 관련, 『비록 학문적인 연구지만 지극히 조심스러워 출간을 미뤄왔다』며 『다행히 근년에 이르면서는 세상도 변하고 학문 풍토도 완화돼 오랜 원고를 정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 근현대 농업사 연구』는 농업 문제를 근대화하기 위한 두가지 방략, 즉 지주 중심의 개혁안과 농민 중심의 개혁안을 축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근대화 방안으로 구현된 지주 중심의 개혁안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것이 대지주와 일제의 농업 지배 기구 연구다. 반면 역사 속에서 실패한 농민 중심의 개혁안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연구는 1862년의 진주 민란 등 분출했던 농민 항쟁과 1894년의 동학 농민 전쟁, 일제하 소작쟁의, 이어지는 민족 해방 운동 등 혁명 운동이다.
이 책은 일제하까지의 농업사 연구를 남북의 농업 개혁 문제와 연관해 결론지었다. 즉「무상 몰수·무상 분배」로 진행된 북한의 농지 개혁은 일제하 민족 해방 운동을 이끌었던 사회주의 진영의 이념을 반영한 것이며, 남한의 「유상 매수·유상 분배」 개혁은 해방 정국을 주도한 지주 중심의 우익 이념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농업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 일제의 침략 하에 신음해야 했던 우리 역사는 또다시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하에서 여전히 농업 개혁의 역사적 과제를 떠 안고 있다는 것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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