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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육상 스타 크라베-약물 검사 조작설로 시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구 동독 출신으로 세계 여자 육상 최고의 스프린터 (91년도 1백m·2백m 챔피언)인 카트린 크라베 (23)의 도핑테스트 (약물 검사) 조작설로 독일 체육계와 의학계가 온통 시끌시끌하다. 언론들이 이 뉴스를 연일 집중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구 동독 선수 및 체육인을 매장시키기 위한 서독 체육계의 음모, 또는 금품을 둘러싼 알력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앞으로 사회·정치 문제로까지 비화될 것으로 보인다.
1m78㎝의 탄력 있는 몸매에 금발 미녀인 크라베는 지난해 동경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흑인들의 독무대였던 1백m와 2백m에서 우승, 히로인이 됐었다. 최근 프랑스의 한 잡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선수」로 꼽히기도 한 그녀의 인기는 현재 국내외를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이처럼 섹시한 미모로 광고계에서까지 주목받고 있는 크라베가 제2의 엔 존슨이 될지도 모를 약물 복용 스캔들에 휘말리게된 배경은 이렇다.
지난달 24일 독일육상 팀의 바르셀로나 여름 올림픽 해외 전지 훈련지인 남아공에서 훈련 중인 크라베, 그리고 그녀와 같은 구 동독 노이브란덴부르크 스포츠 클럽 소속인 그리트 브로이어, 질케 뮐러 등 3명의 여자 육상 선수에 대한 도핑테스트가 실시됐다.
검사를 실시한 만프레트 도니케 교수는 세 선수의 소변에서 복용 금지 물질이 검출되지는 않았지만 세 선수의 소변이 똑같다고 발표했다. 그는 한 사람의 소변을 따로 나누어 제출했거나 세명의 소변을 섞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도핑테스트 조작은 세계 육상 경기 연맹 (IAAF) 규정 제55항에 따라 약물 복용과 같은 처벌 (4년간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게돼 세 선수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가 발표되자 독일 육상 경기 연맹은 지난 주말 칼스루에에서 개최된 독일 실내 육상 경기 대회에 크라베 등 세 선수의 출전을 일시 금지시켰지만 일반적인 A테스트의 결과를 거꾸로 추적해 검증하는 B테스트의 결과가 나와야 진상을 알 수 있다는 견해에 따라 이들은 다시 경기 출전이 허용됐고 크라베는 60m경기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B테스트 결과도 A테스트와 마찬가지로 세 선수의 소변이 똑같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관중들에게 알려져 크라베는 우승하고도 관중들의 야유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이같은 도핑테스트 결과에 대해 크라베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며 펄쩍뛰고 있다. 이들 세 선수의 코치로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토마스 슈프링슈타인은 『지난해 10여 차례의 도핑테스트에서도 문제가 없었는데 조작이란 말도 안된다』며 독일 육상 경기 연맹과 도핑테스트를 실시한 도니케 교수 측에 강한 불만과 함께 의혹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알베르빌 겨울 올림픽 독일 대표단 주치의 요제프 코일 박사는 『세 선수의 소변이 같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임상학적으로 증명된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세 선수를 옹호했다. 또한 독일 육상 연맹 도핑테스트 팀장을 역임한 디터 바론 박사도 『도니케 교수의 분석 결과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같은 트레이닝캠프에서 같은 식사를 하며 같은 하루 일과를 보낸 세 선수의 소변이 같을 수 있다는 것은 경험상 이미 확인된 사실』이라며 세 선수에 대한 편견에 경고를 보냈다.
이번 도핑테스트 조작이 사실일 경우 누가 왜 이같은 일을 저질렀느냐에 초점이 모아지게 된다.
우선 슈프링슈타인 코치 등 선수 측이 첫 번째 용의선상에 오르고 있지만 채뇨 당시 1대1로 입회했던 남아공 여의사도 문제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어 선수 측이 자신들의 주장처럼 결백할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두 번째 용의선상에 오르는 인물은 바로 도핑테스트를 실시한 도니케 교수가 된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통일후 부와 명성을 거머쥔 크라베나 그녀의 소속 클럽이 독일 육상 경기 연맹에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은데 대한 연맹 측의 보복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 야당인 사민당의 체육 문제 담당 대변인 빌헬름 슈미트 의원은 『육상 경기 연맹의 태도에 수상한 점이 많다』고 선수 측을 옹호했다.
이 문제로 헬무트 마이어 육상 경기 연맹 회장은 12일 의회의 체육분과 위원회에 소환돼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번 사건은 이른바 구 동독 체육인에 대한 전반적인「마녀 사냥」 (나치가 유대인에 행한 박해)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일부 크라베를 옹호하는 측과 구 동독 시민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크라베 측은 이 사건으로 바르셀로나 여름 올림픽 출전이 금지될 경우 정식으로 제소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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