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뇌신경과학이야기

얼굴이 무엇이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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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눈으로 보는 것 중에서 늘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도 구별을 잘하는 것이 있다. 얼굴이다. 얼굴은 가위나 책상.라디오 같은 물건과 달리 한결같이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인데도 우리는 기막히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구별해 낸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 어느 날 뇌가 손상되면 자기 아내의 얼굴도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병에 걸릴 수 있다. 이를 안면 실인증이라고 한다. 즉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사물은 알아보는데 얼굴은 못 알아보는 기막힌 증세다. 물론 치매나 기억상실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또는 입은 옷이나 액세서리를 보면 바로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다. 시력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얼굴은 잘 구별하면서 사물은 구별하지 못하는 증세를 보이는 뇌 손상 환자도 있을까? 세상에는 그런 환자도 있다. 그렇다면 얼굴을 전담하는 뇌 영역이 따로 있단 말인가? 최근에 정상인의 두뇌활동을 찍을 수 있는 기능자기공명영상촬영(fMRI) 등으로 연구해 보면 머리의 뒤쪽 아랫부분에 그런 자리가 있음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오른쪽 뇌의 그 부분이 그렇다. 우리 뇌는 얼굴을 똑바로 보는 데 특화되어 있어 얼굴을 뒤집어서 보여주면 당황한다. 누군지 알아보는 데 한참 걸릴 뿐 아니라, 눈이나 입이 부분적으로 거꾸로 그려져 있어도 이상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를 얼굴의 역전효과라고 한다. 이렇게 뇌에는 얼굴의 각도, 표정과 무관하게 그 얼굴이 누구에 속하는 것인지를 판별해 내는(얼굴의 신분을 파악하는), 즉 얼굴의 불변 속성에 민감한 뇌 부위(방추상회 안면 영역)가 있다.

그런가 하면 뇌의 어떤 부분(상측두구)은 시선이나 입술의 움직임과 같이 특히 사회적 유의성을 갖는 얼굴의 동작 단서에 민감한 영역이 있다. 물론 얼굴의 감정 표현을 읽는 것은 뇌의 또 다른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처리한다. 어쩌면 얼굴을 보기 위해 준비된 뇌 영역이 너무 자동적으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화장실 부스의 얼룩 무늬에서 간혹 사람의 얼굴을 보지는 않는가? 우리는 그런 나뭇결 무늬 속에서 사람의 얼굴도 보고, 바위에 녹은 눈 속에서 예수의 얼굴도 본다. 뇌가 만들어 내는 장난인 것이다. 물론 뇌가 얼굴을 보기 위해 준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누구의 얼굴인지 알아보는 이 능력은 경험을 통해 더욱 발달한다. 예를 들어 12세 이전의 아이들은 친한 학급 친구들의 얼굴 이외에 다른 학교 아이들의 얼굴을 안경이나 머리 모양 같은 특징 없이는 구별하기 어려워한다. 한마디로 얼굴 인식 능력이란 비슷비슷한 것 안에서 개별적인 구별을 해내는 능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얼굴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특급 정보 처리를 거치는가?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얼굴을 보고, 가족의 얼굴을 보고 방긋거리면서 아주 오래 자라야 한다. 그러기에 눈에 보이는 얼굴이 누구인지 빨리 알아차리고 그 얼굴에 따라 가족과 낯선 사람에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얼굴이라는 정보는 뇌로 들어오자마자 특급 정보처리 과정을 거치게 진화된 것 같다. 다 자란 다음에도 눈에 보이는 얼굴이 친숙한 (또는 유명인의) 얼굴인지 또는 모르는 사람의 얼굴인지에 따라 우리의 뇌는 즉각적으로 다르게 반응한다.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얼굴반응 뇌 활동을 잰다면? 요즘에 자라는 어린 세대는 만화영화의 주인공 얼굴이나 유명 연예인의 얼굴에 더 큰 뇌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까? 생존에 필요한 더 친숙한 얼굴로 뇌가 착각하지는 않을지.

◆약력:고려대, 미 일리노이 주립대 졸업, 서울대 핵의학과 BK 연구조교수

강은주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