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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장관, 나 홀로 소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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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일 정부 과천청사 내 농림부 대회의실.

농림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협상 주역의 한 사람인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가 "우리 측에 최대한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민 차관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말을 가로챘다. "민 차관보의 말을 수정하겠다"며 박 장관은 "성공이란 말은 적당치 않다"고 반박했다.

박 장관의 소신 발언은 4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에서 박 장관은 "FTA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약속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서도 그는 "언제 재개할 거라고 말할 수 없다"고 버텼다. 듣기에 따라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정면으로 거슬리는 듯한 발언이었다.

FTA로 가장 피해를 볼 계층은 농민일 수밖에 없다. 화난 농심을 달래야 할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박 장관의 발언은 그래서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박 장관이 시종일관 밀어붙인 덕에 그나마 협상에서 선방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쇠고기 문제는 애당초 이렇게까지 꼬일 일이 아니었다. 뼛조각이 나온 상자만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수입했더라면 협상 결과도 많이 달라질 수 있었다. 농림부조차 FTA 협상을 앞두고 이 방안에 동의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농림부는 지난 2월 미국 협상단이 오자 '검역 주권'이란 실속없는 명분을 고집했다. 박 장관은 그때도 '국민의 안전'을 내세웠다. 물론 식품 위험성은 누구도 100% 자신할 수 없다. 그래서 권위 있는 국제기구가 안전성을 판정하고 세계 대다수 나라는 이를 존중한다. 그 기구가 국제수역사무국(OIE)이다. 5월이면 미국에 대한 OIE의 판정 결과가 나온다.

박 장관과 농림부가 그때 가서도 국민 건강을 볼모로 시간을 끈다면 곤란하다. 자칫 애써 타결지은 FTA 협정 전체가 삐걱거릴 수도 있다. 협상에선 박 장관의 뚝심이 도움이 됐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미 일본.홍콩.싱가포르.대만 등 90여 개 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 미국에 사는 250만 교민들은 지금도 아무 탈 없이 싼값에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있다.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