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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내 족쇄 풀어야 한국경제 업그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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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협상이 오랜 진통 끝에 결실을 보게 됐다. 남아 있는 국회 비준 과정을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강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협상 타결이 경제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글로벌 추세에 맞도록 각종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경제제도 선진화를 달성해야 한.미 FTA가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협상이 타결됐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행이지만 효과적인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협상 추진 과정에서 제기됐던 쟁점들을 평가하고 그 시사점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미 FTA를 대외경제 정책 문제로 인식해 전략을 수립하고 대처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FTA 협상을 대외 협상이라고 하지만 그 주된 내용은 대부분 국내 협상 과제였다. 외국과의 협상에서 주고받는 것보다는 국내 입장을 일관성 있게 정립하는 게 훨씬 어려운 작업이라는 의미에서 국내 정책 담당자들의 책임을 강조했어야 했다. 한편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보다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기업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대외통상 정책을 수세적이 아닌 공세적 기조로 전환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미국과의 양자 간 문제로 부각시킨 것도 적절하지 못했다. 미국보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득을 얻는지가 관건이 아니고, 한.미 FTA가 우리 경제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인지가 잣대가 돼야 했다. 우리 경제제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국제경쟁력을 제고함으로써 대일.대중국.대유럽 무역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한.미 FTA의 중요한 긍정적 효과다. 유럽연합(EU)이나 중국과의 FTA 추진 시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셋째, 심층적 효과 분석 노력이 미진해 협상 준비가 주도면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온갖 세부적인 사례를 수집해 반박 자료로 홍보했는데 정작 정부 정책기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국가 최대 정책 과제에 대한 연구를 대외경제를 담당하는 연구소에 전담시키고 여타 연구소는 피동적으로 참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피상적 효과 분석이 아니라 앞으로 추진해야 할 구체적 구조조정과 실천적 전략 과제들을 다룬 연구 과제가 빈약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넷째, 정치 지도자들의 일관성 결여가 국민의 더 높은 지지를 확보하는 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정권 출범 초기 대표적 개혁 과제로 제기됐던 '동북아 경제허브'란 기치는 이미 오래전에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점, 현 정부의 주요 직책을 역임했던 인사들이 반대론을 피력하고 심지어 선동적.정치적 색채를 띤 구호로 정부를 공격한 것은 국민의 가치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든 부작용을 유발했다.

대외개방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이에 상응하는 국내 자유화 조치가 뒤따라야 하고 동시에 감독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마디로 10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뒤 외환위기를 경험한 교훈이다. 대외개방이 문제가 아니라 그 후속 조치를 등한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대외개방에 소극적인 경제는 그만큼 국내 규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개 외부의 압력에 마지못해 시장을 개방하게 된다.

대외개방만 하고 국내 규제를 풀어 주지 않는 것은 국내 경제주체들에게 족쇄를 채워 놓고 외국과 경쟁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 시장을 외국 기업에 잠식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국내 시각에서 판단해 국제 규범과 동떨어진 규제가 시행되는지 면밀히 분석해 이런 규제를 철폐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규제 개혁을 보완하는 감독 기능 강화가 수반돼야 한다. 사전 규제에 익숙한 정부는 사후 감독 기능 강화에 미숙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미국과 FTA를 맺는 것은 일류 경제로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한 것일 뿐이다. 일류 학교에 입학하면 저절로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수한 인재와 경쟁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으로서는 이 기회를 활용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한국인의 잠재력을 믿어야 한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성공한 동포들을 볼 때, 이렇게 능력 있는 국민을 국내의 울타리에 얽어매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을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고학력화된 한국인의 유일한 활로는 세계경제와의 경쟁을 통해 활동 무대를 넓히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제 합심해 성공한 정책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 할 수 있다. 나라 밖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하고 낡은 이념에 얽매인 일부 정치 지도자의 과거 지향적 정치 행태가 국회 비준 과정에서 횡행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김중수 한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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