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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개발 공약 남발 국토 균형 발전 가로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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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국가나 지역 개발 사업이 국토 계획 등 법정 계획에 반영된 사업만이 추진되는, 이른바 '선(先)계획-후(後)추진' 체계가 정립돼 있다. 동시에 추진 실적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뒤따른다.

우리는 어떠한가? 국토 계획은 최상위 계획으로서의 위상은커녕 관심도 받지 못한다. 계획과 추진이 따로국밥이기 때문이다. 국토 계획은 계획일 뿐이고 실제 추진된 사업은 대선이나 총선에서 그 계획과는 상관없이 정치인들이 남발한 것들이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도 어김없이 이러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지난해에 '제4차 국토종합계획(2006~2020년)'이 수립됐다. 각 도는 현재 이를 구체화하는 '도(道) 종합계획'을 수립 중이다.

그럼에도 각 지역에선 이들 계획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남발하는 개발 공약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예비 후보들은 순방 지역마다 낙원이나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장담한다. 실제 국토 개발 추진 계획이 정치인들에 의해 재수립되고 있는 격이다.

이러한 정치적 국토 개발의 공약화는 우리의 시대적 요청 과제인 선(先)낙후지역 개발 및 균형발전을 통한 국민 통합을 후퇴시킬 위험이 크다. 첫째, 국토 개발이 정치적 공약에 의해 추진될 때 정말로 인구 규모가 작은 낙후지역 개발보다 투표권자가 많은 지역이 우선됨으로써 지역 간 격차의 악순환이 증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표심 관리 차원에서 어느 지역이든 요청만 있으면 공약으로 수용함으로써 중복 투자와 낭비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지역 간 특성과 잠재력에 따라 차별화된 특화 개발 전략이 무시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실례가 17대 국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이다. 광주문화중심도시특별법이 제정되자 경주와 사비역사문화도시특별법이 뒤를 잇고, 남해안개발특별법이 제시되자 동해안.서해안.새만금특별법이 계류 중이다. 심지어 과천지원특별법.행복도시건설업체참여제한완화특별법까지 제정을 기다리고 있다.

전국 모든 해안을 해양관광지로 조성하고, 모든 도시를 문화도시로 육성하고, 조금만 피해를 봐도 특별법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지역이기주의를 정치인들이 조장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 취지가 '지역 불균형 해소'라면 한반도 서남권, 강원도 남부, 경북 북부 지역에 우선 적용돼야 할 게 아닌가.

무리한 바람 같지만 올해 대선,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는 꼭 국토 계획을 존중하는 후보가 당선되길 기원해 본다. 그 계획에 반영된 사업 가운데 지역별 특성이나 잠재력을 고려해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말이다.

이건철 광주전남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본란은 16개 시.도 60명의 오피니언 리더가 참여한 중앙일보의 '전국열린광장' 제4기 지역위원들의 기고로 만듭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전국열린광장' 인터넷 카페(http://cafe.joins.com/openzone)에 의견을 올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