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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수호통상조약과 한·미 FTA, 무엇이 달라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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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과 미국의 공식적인 첫 수교는 1882년 5월 22일 거행됐다. 당시 조선은 미국과 14개 조항의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서명했다. 서방국가로는 처음이었다. 제물포(인천)화도진에서 행해진 이 서명의 조선측 대표는 신헌, 미국의 대표는 로버트 윌리엄 슈펠트였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일방이 타국으로부터 불공정한 대우를 받거나 강압을 받을 경우 상대방은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1883년 5월엔 초대 미국전권공사 H.푸트가 입국해 비준서를 교환했고, 조선정부에서도 같은 해 6월 전권대신 민영익, 부관 홍영식을 미국에 파견함으로써 양국의 역사적 교류가 시작됐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우리가 쇄국에서 개국으로 가는 새로운 도전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의 힘은 너무 약했다. 대등하게 협상할 수 없었다. 곧이어 한반도에서 벌어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을사늑약에 이은 일본의 침략에 무기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미국이 일본의 침략을 제지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것은 조선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다. 한국과 미국이 다시 만난 것은 해방 이후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혈맹이 된다.

2007년 한국과 미국은 또 한 번의 뜻깊은 역사를 펼쳐가고 있다. 한.미 FTA타결이 그것이다. 125년 전에 그랬듯이, 오늘의 한.미 FTA 선택도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125년간 무엇이 달라졌나. 학계에서는 우리의 역량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된 점을 가장 큰 차이로 꼽는다. 125년 전의 형편없던 지위에서 이제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의회와 대통령도 신경 쓰는 협상 파트너로 성장한 것이다. 양국 간 협상에 반대하는 여론과 시위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점도 125년 전과 달라진 모습으로 지적된다.

배영대 기자

※자문위원:국사편찬위원회 장득진 편사기획실장, 구선희 사료조사실장, 박홍갑 연구편찬실장, 박한남 자료정보실장, 최영묵.박대재 편사연구사, 김정수.이승준 역시 담당 파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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