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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미 FTA 갈등을 넘어 미래로 나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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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어제 타결됐다. 세계 제1의 경제.외교.군사 강국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중 하나인 한국 사이에 무역 빗장이 풀린 것이다. 양국 경제 규모로 보면 유럽연합(EU).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어 세계 3위다. 협정은 양국 모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은 1993년의 NAFTA 이래 FTA 문을 다시 열면서 아시아로 가는 길을 닦았다. 한국은 구한말 개국과 60년대 수출입국에 이어 '제3의 개국'에 해당되는 대외개방으로 나아가게 됐다. 한국은 안마당의 집토끼보다는 경쟁을 통해 초원의 사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한.미 FTA는 내용만 보면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중(中)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료 등 핵심 서비스 부분이 빠졌고 부분적으론 관세 철폐의 기간이 늘어났다. 개방의 폭이 미국보다는 한국이 더 커서 불평등이라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누가 승자인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아니 현재는 그런 것이 무의미할지 모른다. 많은 전문가는 잉크로 찍힌 협정의 문구보다는 잉크 밑에 숨어 있는 '개방의 잠재 이익'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FTA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FTA 성사에는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과 지도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2005년 가을 FTA 추진을 결심한 후 지난해 1월 신년연설에서 국민에게 이를 밝혔다. 그에게 표를 던졌던 노동자.농민.진보운동권은 격렬히 반대했다. 공공건물이 불타고 경찰이 피를 흘렸다. 그러나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개방하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개방하지 않으면 실패만 있다"는 단순명료한 논리로 맞섰다. 다른 부문에서는 근대화를 폄하하고 사회갈등을 부추기고 반(反)시장적 정책을 서슴지 않았던 대통령이었기에 FTA에 대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일관된 의지로 불신을 무력화시켰다. 정경유착의 해소, 권력기관의 독립, 권위주의의 청산 등과 함께 한.미 FTA는 노 대통령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FTA가 우리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번 맞는 얘기다.

그러나 대통령의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그는 농업.축산업 등 FTA로 타격을 받는 부문을 보완토록 정부를 이끌어야 한다. 구체적인 대책으로 FTA 반대세력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회 비준에 주력해야 한다. 그는 탈당했으므로 어느 때보다도 여당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대통령은 배전의 각오로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국회 비준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미 50명 가까운 의원이 반대 결사체를 구성했다. 여야를 떠나 상당수가 내용과 대책을 따져보고 판단하겠다고 칼을 갈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농촌 출신 의원들은 FTA에 반대하는 농민 유권자의 눈치를 볼 것이다. 의원들은 지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떠나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는 장도(壯途)에 용감하게 동참해야 할 것이다. 가을 정기국회에 비준안이 상정되면 대통령 선거의 역풍이 불 수도 있다. 대선주자와 각당 지도부가 국익보다는 얄팍한 표 계산의 유혹에 빠지면 유권자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2002년 효순.미선양 사건의 촛불 사태가 한.미 동맹이라는 국익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FTA 반대세력은 그동안 근거 없는 불안의식과 논리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한때 집권세력의 지도부와 국무위원을 지낸 대선주자들은 지금도 국회 의사당에서 어이없는 돗자리 단식판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각성해야 한다. FTA라는 시대적 대세의 강물은 이미 흐르기 시작했다. 누구도 막기 어렵다. 이제는 단식판과 죽봉을 거두고 무한경쟁을 이겨낼 영법(泳法)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 FTA로 일부는 고통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 공동체가 살아나가야 할 길이라면 그 고통은 역사의 비료가 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