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KUFTA시대] 타결되면 남은 절차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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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타결 후 협정 문안을 다듬는 작업에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양측의 법률가들이 협정 문안을 꼼꼼히 검토하는 데만 두 달 이상이 걸린다. 이 과정을 거쳐 6월 말께 양국 정상이 협정문에 서명하면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FTA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행에 앞서 조약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비준(批准) 절차를 거치는데, 바로 국회가 이 비준에 동의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KUFTA는 또 다른 고비를 맞게 된다. 일단 정부는 9월 정기국회 때 비준 동의안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국회는 소관 상임위원회인 통일외교통상위의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한다. 본회의에서는 일반 법률안과 마찬가지로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통과된다. 효력은 협정문에 적힌 날짜나 조건에 맞춰 발생한다.

◆ 다음 정부로 넘어갈 수도=12월 대선은 FTA 비준의 최대 걸림돌이다. 벌써 정치권은 농민표 등을 의식한 FTA 반대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범여권의 분열상은 심각할 정도다. 현 정부 들어 장관까지 지낸 김근태.천정배 의원은 단식 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FTA에 찬성하는 정치인들조차 반대 여론을 눌러가며 통과를 적극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는 협상 내용이 이 무렵 하나둘씩 공개되면 반대 여론도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렇게 FTA 비준동의안을 놓고 국회가 시간만 낭비하다 보면 금세 내년 4월 총선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총선이 치러지고 17대 국회의 임기가 종료되면 비준 동의안은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학계 원로인 김철수 명지대 초빙교수는 "FTA 비준 동의안도 법률안과 마찬가지로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폐기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차기 정부가 새로 국회에 상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FTA의 '공'은 국회에서 차기 정부로 넘어간다. 과거 사례를 볼 때 신임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FTA의 국회 상정 자체가 상당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KUFTA는 일러야 2009년에나 발효될 전망이다.

협상단 관계자는 "차기 대통령이 여론 부담 때문에 전 정부 임기 중 타결한 FTA 상정에 적극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교역 규모가 미국에 비해 20분의 1에 불과한 칠레와의 FTA도 체결 후 시행까지는 1년6개월이 걸렸다. 이 역시 정권 교체의 영향이 컸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기 직전 서명했던 한.칠레 FTA안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 상정이 지연됐고, 농민 단체의 극심한 반대 속에 국회 비준 동의안 통과에만 1년이 걸렸다. KUFTA가 일러야 2009년이나 발효될 것으로 보는 데는 이런 복잡한 상황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현 정부가 정치 상황을 봐가면서 비준 동의안의 의회 제출 자체를 내년 이후로 넘길 가능성도 이야기한다.

미국 변수도 있다. FTA는 상호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 국회가 동의해 줘도 상대편이 통과시키지 않으면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민주당이 장악한 미 의회는 한국의 농업 분야 개방 정도 등을 문제 삼아 승인을 미룰 수도 있다. 1993년 미 행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지만 비준안 통과까지는 1년이 걸렸다. 부시 대통령이 체결한 안을 클린턴 정부가 상당 기간 상정을 미룬 것이다. 미국은 또 2008년 11월 4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임 규정 때문에 출마하지 않는다. 미국도 차기 정부 성향에 따라 KUFTA 처리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윤창희 기자

◆ FTA 비준=FTA 협정은 조약의 일종으로 양국 원수가 시행에 앞서 조약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비준(批准) 절차를 거쳐야 효력이 생긴다. 비준을 위해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또 FTA는 국내 법률안과 같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에서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면 자동 폐기된다는 게 법률계의 다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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