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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국가관리 대입맹점/문제지도난 파문… 문제점과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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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감독 소홀·늑장 대처로 혼란가중/예비문제도 준비안해 유사대비 “구멍”/“전국홍역 없게 입시일 자율결정 바람직”
후기대학 입시문제 도난 및 시험연기 사태는 국가관리의 공동출제와 대학별시행을 채택하고 있는 현행 대학입시제도가 안고 있는 최대의 맹점이 현실화된 것으로 우리나라 입시사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이로 인해 27만여명의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져 피해를 보게 됐으며 대학 학사운영에 차질을 빚게 됐다.
과거 대학별입시가 시행되던 시절엔 학교별로 시험문제가 유출되는 사례가 없지 않았으나 81년 국가관리 이후에 이같은 문제지 도난과 시험연기사태는 처음 있는 일이어서 국가행정의 공신력이 크게 실추됐다.
현행의 입시제도는 모든 수험생이 일시에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출제에서부터 시험시행까지의 빈틈없는 관리가 항상 최대관제가 되어왔다.
자칫 어느 과정에서든 문제가 유출되면 전국대학의 시험이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출제 및 시험관리절차는 보통 전형 한달전 출제위원(대학교수)과 검토위원(고교교사)이 외부와 차단된 합숙소에서 삼엄한 경비속에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험문제지 역시 엄중경비가 펼쳐지는 인쇄소에서 인쇄해 전형일 2∼3일전부터 대학별로 고사관리책임자에게 인계된다. 시험지수송도 보안을 위해 컨테이너차량이 이용되며 교육부 파견관·경비경찰관이 동승하도록 되어 있다.
대학의 문제지 보관 장소는 ▲출입문·창문에 철책·방화시설이 설치되고 ▲2중 잠금장치가 있어야 하며 ▲경비경찰관 또는 상당수의 경비요원이 항시 교대로 근무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도난사건이 발생한 서울신학대학은 교무과 창문에 철책이 설치되지 않았으며 문제지가 보관됐던 전산실열쇠도 범인이 열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다.
또 경비경찰관은 경찰의 제안을 학교측이 묵살해 아예 배치되지도 않았으며 자체경비원도 2명에 불과해 교대근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오전 7시40분에야 도난사실을 확인했을 정도로 허술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교육부측에 있다.
우선 이같은 사태에 대비해 출제토록 하고 있는 예비문제를 만들지 않았던 점이다.
각종 보안대책에도 불구하고 문제지가 누출되었을 경우에 대비해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재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91학년도까지는 예비문제를 출제했었으나 92학년도 전기대입시부터는 이같은 대비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의 경우 예비문제만 출제했었더라면 1주일 인쇄기간정도 시험을 연기하면 돼 전문대의 제때 개강이 어렵게 된 현재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미뤄진 후기대입시와 전문대 입시가 촉박한 일정속에 진행돼 채점관리 등에 또다른 부담이 예상되고 있다.
교육부는 또 서울신학대학에 대한 문제지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서울신학대측으로부터 문제지 보안대책에 대한 서류보고만 받았을 뿐 사전에 현장확인을 하지 않았으며,파견관이 문제지의 보관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보안시설에 문제가 드러나면 이를 즉시 시정하도록 해야함에도 이를 소홀히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 파견관이 허술한 문제지보관상태를 지적하고 시정지시를 내렸더라면 이번 도난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학교측은 도난사실 발견후 1시간40분만에야 교육부에 보고를 하고,교육부도 낮 12시가 훨씬 넘어서야 이를 확인한뒤 시험연기를 발표함으로써 수험생과 대학에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상황대처능력에서도 문제를 노출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학력고사시대 마감 1년을 앞두고 터진 이번 사건은 94학년도부터 시행될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본고사를 앞두고 획일적 국가관리입시의 한계성과 위험성,대학 자율능력의 현주소를 동시에 극명하게 확인해 준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대학의 자율관리능력,고교교육에의 영향 등을 이유로 국가관리식 입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눈치지원·난이도시비 등으로 대학입시나 국가에 짐이 되고 사회의 힘을 소모한다는 지적이 높았다.
교육관계자들사이에는 새로운 대입제도는 일본의 경우처럼 입시날짜까지 대학의 자율에 맡겨 수험생들에게 기회를 다양하게 주고 입시 때문에 나라 전체가 홍역을 치르는 일은 없도록 제도의 개혁을 꾀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이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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