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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희숙의 ‘그림 속 에로티시즘’ ④] 파멸 부르는 위험한 쾌락 ‘불륜’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

▶<비너스와 마르스를 놀라게 하는 불카누스>
야코포 틴토레토
1550~1555
135×198㎝
뮌헨 피나코텍미술관 소장

아무리 해도 싫증나지 않는 일이 있다면 첫 번째가 사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어지면서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가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로 마음을 묶어 놓았기 때문에 사랑은 정지돼 있다.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조차 없애게 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말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 결혼만큼은 파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혼을 파괴하는 순간 사회적 책임이 곧바로 자신의 등을 후려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인 공식적 사랑도 바람처럼 다가오는 사랑을 막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불륜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보다 불륜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기를 더 원하는 듯하다. 대개 불륜은 헤어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상처에 노출될 우려가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마음 한켠으로 사랑이라는 허울을 쓰고 앉아 가슴을 앓기보다 불륜이라는 가면을 쓰면 그래서 편해지는 것이다. 사랑이 깨지면 의사의 심리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상처가 깊지만, 불륜은 깨져도 반창고만 필요할 정도의 상처만 남는다고 단언하면 사랑과 불륜을 너무 도식적으로 구분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대개 젊은 날 수없이 사랑하면서 상처받고 그 상처로 인해 성숙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랑에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 치유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불륜을 기웃거린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의 유령>
애리 셰퍼
1855
캔버스에 유채
171×239㎝
루브르박물관 소장

불륜이 습관화하면 제자리에 돌아와 상처를 치유한 다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결혼은 충만감을 선사하지만,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소중한 부분을 잃어버렸을 것 같다는 상실감도 함께 부여한다고 한다. 그 상실감이란 과연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항상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결혼은 토지 등기부등본처럼 확실하게 도장을 찍었기에 상대방에게 무관심해지기 일쑤다. 심지어 사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결혼을 영위하려는 태도마저 생겨난다. 그래서 사는 재미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지 않고 사는 즐거움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다.

불륜이 그러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일탈의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조금만 비켜설 때 쾌락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닌가?

일탈을 꿈꾸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다. 바람처럼 흐르는 사랑의 마음은 어느 시대나 같기 때문이다. 일탈이 주는 흥미와 서스펜스는 사는 재미를 더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불륜의 현장을 들키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불륜은 어느 누구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욕망이다. 호로메스의 <오디세이아>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비너스와 마르스가 불륜을 저지르다 비너스의 남편에게 현장을 들키는 이야기가 있다.

신화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에게는 못생긴 남편 불카누스가 있다. 불카누스는 아버지 주피터 신의 장난으로 비너스와 결혼하게 된다. 바람둥이의 천성을 버리지 못한 비너스는 남편 불카누스를 속이고 유명한 바람둥이 마르스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다.

신화에 표현된 에로틱한 꿈의 세계

어머니 주노마저 아들의 모습을 싫어할 정도로 못생긴 불카누스는 비너스와 마르스의 정사를 알고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불카누스는 유독 질투심이 강했다. 태양으로부터 아내의 불륜 사실을 전해 들은 불카누스는 아내의 불륜 장면을 덮치기로 마음먹고 두 사람이 정사를 할 침대에 청동 그물을 설치한다.

야코포 틴토레토(1519~1594)의 <비너스와 마르스를 놀라게 하는 불카누스>. 이 작품은 불카누스가 불륜의 현장을 찾아온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불카누스는 의혹의 눈초리로 비너스의 허리에 걸쳐 있는 침대 시트를 들춘다. 비너스는 남편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스스럼없이 시트를 들어올리고 있다. 비너스가 누워 있는 침대는 당시 베네치아 매춘부들이 사용하던 침대의 디자인으로, 비너스의 바람기를 상징한다.

그런데 마르스는 갑옷을 입은 채 탁자 아래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 아닌가? 아직 불카누스에게 불륜의 현장을 들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너스 침대 밑에 있는 개가 마르스를 보고 짖고 있어 들키기 직전임을 암시한다. 화면 뒤쪽에 보이는 마르스의 방패에 침대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다시 한번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야코포 틴토레토는 색채와 빛에서 베네치아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불륜을 은폐하기 위한 비너스의 뻔뻔함과 폭로 직전의 불카누스의 긴장감을 한 화면에 담아냈다.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였다.

헨드리크 드 클레르크(1570~1629)는 <불카누스의 함정에 빠진 마르스와 비너스>에서 불카누스의 함정에 빠져 마르스와 비너스가 다른 신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을 묘사해 눈길을 끈다.

불카누스의 계략을 알지 못하는 연인들은 위험에 빠진 것도 모른 채 달콤한 사랑에 빠져 막 정사를 하려고 한다. 그 순간 청동 그물이 두 사람을 덮쳐 꼼짝 못하게 한다. 이때 불카누스는 올림푸스에 있는 신들을 불러 모아 두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불카누스의 함정에 빠진 마르스와 비너스>
헨드리크 드 클레르크
런던 휘트필드갤러리 소장

헨드리크 드 클레르크는 신화의 내용에 충실하게 표현한 화가다. 당시 전 유럽의 미술가들은 후원자를 위해 에로틱한 꿈의 세계를 창출했고, 클레르크도 신화의 내용을 빌려 에로틱한 세계를 묘사했다.

신들도 사랑의 바람에는 속수무책인 것처럼 바람결에 불어오는 사람에 사람들의 마음은 저절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항상 사랑은 자신의 존재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을 타고 흐른다. 멀리 있는 존재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거리는 좁다. 자주 보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이지, 멀리 있는 사람에게 사랑이 찾아가지는 않는다.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자와 남자가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 흔하지 않은 기회 중 하나가 상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불운을 겪는 일이다. 불운인지 알지만 사랑에 빠진 영혼은 미친 듯 질주하기 시작한다. 불운에 노출되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 세상이 침묵하기만 바란다. 불운한 여인들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기도는 항상 침묵하고 파도는 요란하게 밀려온다.

상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다

상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 가장 대표적 이야기가 500년께 영국의 위대한 아더 왕의 아내 귀네비에와 그의 기사 랜슬럿이다. 아더 왕의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 랜슬럿은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가 궁정에 나타나면 여인들은 사랑에 몸살을 앓았지만, 그는 어느 여자에게도 마음이 주지 않았다. 아더 왕과 왕비 귀네비에도 외모뿐만 아니라 탁월한 전공을 자랑하는 그를 신뢰한다.

기사로서 완벽한 랜슬럿은 아름다운 왕비의 기사가 된다.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던 두 사람은 관심을 넘어 애정을 키우게 되었고, 남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속삭이는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결국 아더 왕에게 들키고, 랜슬럿은 부정한 여인으로 화형에 처해지기 직전의 귀네비에를 구해낸다. 왕에 대한 충성심보다 사랑에 자신을 몰아넣으면서 두 사람은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두 사람의 불륜을 넘어선 지독한 사랑은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게 되었고, 책으로 출판되기에 이른다.

<침대에 있는 랜슬럿과 귀네비에>. 이 작품은 아더 왕의 이야기를 다룬 <랜슬럿 성배>라는 책에 나오는 삽화 중 하나다. 14세기 프랑스 귀족들에게 사랑받았던 소설이 <랜슬럿 성배> 중에 나오는 이야기다. 5부작 소설에 삽화를 그려 넣음으로써 책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볼 거리를 제공했다. 이 삽화는 랜슬럿과 귀네비에가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부르군도 공작에게 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오를레앙 공작>
외젠 들라크루아
1825~1826
32×25㎝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싸미술관 소장

화면 왼쪽 문이 열려 있는 것은 귀네비에가 사랑을 허락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검은 색으로 표현한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여자의 은밀한 부위를 상징한다. 두 사람은 침대 시트에 몸이 감겨 있지만, 방금 사랑을 하고 난 듯 사랑의 황홀함으로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정사 장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 삽화는 두 사람의 사랑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상사의 아내를 사랑하는 일처럼 자신의 운명을 주사위처럼 던져놓는 일도 없다. 어둠의 파도가 조용히 물러나 주기만 바라지만 사랑만큼은 속이지 못한다. 사랑할 때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태양은 떠오르게 마련이다. 피하고 싶어도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면 연인들의 삶은 송두리째 파괴된다.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 부닥쳤을 때 불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르군도 공작에게 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오를레앙 공작> 작품에서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그런 위기의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이 작품은 치명적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불륜의 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벌거벗은 상황에서 위기가 닥치면 여자들은 제일 먼저 얼굴을 가린다. 벌거벗은 육체만으로는 누구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얼굴만 가리면 자신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달콤한 즐거움을 포기할 줄 모르는 오를레앙 공작은 주군의 아내를 유혹한다. 공작 부인과 정사를 나누던 중 부인의 남편 부르군도 공작의 기습적인 방문을 받는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를레앙 공작은 직접 부닥치는 전략을 선택한다.

이 작품에서 정사를 벌이던 오를레앙 공작은 여자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오를레앙 공작은 부르군도 공작을 자신의 침실로 안내하고는 침대 시트를 높게 들어올려 정부의 벌거벗은 육체만 노출하고 얼굴은 가려버린다. 여인은 침대 시트 속에서도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두 팔을 모으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

차라리 사랑하지 말 것을…

하반신을 그대로 노출한 채 누워 있는 여인을 보고 부르군도 공작은 아내인 것 같다고 의심하지만 얼굴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느낌만으로 오를레앙 공작에게 이 여인이 자신의 아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아내의 벌거벗은 몸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이 알려질까 두려웠다. 마침내 그는 “저 여인은 내 아내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선다.

낭만파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는 간부의 지혜를 표현하기 위해 이 작품에서 부르군도 공작의 시선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부르군도 공작은 자신의 아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지만 하반신을 드러낸 채 누워 있는 아름다운 육체를 보고 매력을 느낀다. 그러고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남자로서의 호기심을 먼저 드러낸다. 침대 시트를 걷어올려 정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오를레앙 공작의 행위는 노출과 은폐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위기 상황을 넘기고 있다.

▶<침대에 있는 랜슬럿과 귀네비에>

<랜슬럿 성배> 삽화
1320년경
런던 브리티시라이브러리 소장

출구 없는 상황에 몰렸을 때도 살아남는 자가 있지만, 사랑은 그리 만만치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제도권의 보호를 받으면 좋겠지만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할 때 현실은 잔인하다. 사랑은 소리없이 다가와 운명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

부질없는 사랑에 매달린 불행한 연인들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인 줄 뻔히 알지만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친다. 파국으로 치달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배반할 수 없어 천륜까지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천륜까지 저버린 비극적 사랑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단테가 <신곡> 지옥 편에 쓰면서 유명해졌다.

이탈리아 라벤다의 군주 말라테스타 가문과 라미니의 영주 다 폴렌타 가문은 상권에 대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녀들을 정략결혼시키기로 합의한다. 말라테스타 가문에서는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가문의 상속자이자 결혼할 당사자인 조반니가 절름발이에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잘생긴 조반니의 동생 파올로를 내세워 다 폴렌타 가문의 딸 프란체스카와 맞선을 보게 한다.

정략결혼에 반대하던 프란체스카는 잘생긴 파올로의 모습에 반해 결혼을 허락한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끌렸다. 프란체스카는 첫눈에 반한 남자 파올로가 남편인 줄 알고 결혼하지만 첫날밤에 남편이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행복하다고 생각한 결혼은 순식간에 불행을 잉태하고 말았다.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서 두 사람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고, 결국 그들의 운명은 실타래처럼 얽혀 버렸다. 그들은 성격이 난폭한 조반니의 눈을 피해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고, 두 사람의 위험한 사랑은 그렇게 파멸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마침내 그들의 사랑은 발각되고 만다. 조반니의 염탐꾼이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남편은 질투에 눈이 멀어 두 사람의 목을 칼로 베어 버린다.

저승에서도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천륜까지 저버린 불행한 연인들은 중세의 법에 따라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신곡>은 단테가 지옥을 여행하던 중 두 연인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리 셰퍼(1795~1858)의 작품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의 유령>은 연인들이 저승에서도 사랑을 잊지 못해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표현했다. 지옥을 찾은 단테 앞에 두 사람은 홀연히 나타나 결코 헤어질 수 없었음을 알려준다.

단테의 <신곡>을 충실하게 표현한 셰퍼의 이 작품은 비극적인 그들의 사랑이 어떤 경우에도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묘사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다른 작품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 결국 셰퍼는 이 작품의 아류만 그린 불행한 화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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