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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한잔'이 애환 달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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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샐러리맨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직장 내에서의 희로애락은 “끝나고 소주 한잔”으로 이어지곤 한다. 회식문화가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술자리는 직장인의 필수 코스다. 이 점에서 보면, 지난 35년간 소주와 맥주 값 변화는 팍팍해진 직장인의 삶을 볼 때 그나마 다행스럽다. 단순가격으로 비교했을 때 맥주는 지난 35년간 6.4배 올랐다.

소주는 13.1배다. 가장 적게 오른 품목 1, 2위다. 소매점 판매가 기준이지만 식당이나 술집에서 판매되는 가격도 상승률은 다른 품목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시내버스료와 설렁탕·자장면 값이 50배 이상씩 오르고 다방커피가 70배, 등심이 71배 오른 것에 비하면 ‘참 안 오른 가격’임에는 틀림없다.

소주가 대중주로 자리 잡은 것은 70년대 초다. 그 전까지는 막걸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었다. 70년도 가격은 72원이었다. 이때 소주에 붙는 주세율은 35%였다. 35% 주세율은 2000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우리나라의 위스키와 소주 간 세율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최종판결을 내려 정부가 72%로 올릴 때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소주는 국민주, 서민주로 인식되면서 가격인상에 매우 민감한 제품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2005년 정부가 소주값을 인상하려는 방침을 세웠다가 여당(열린우리당)의 반대로 철회한 것도 같은 이유다. 물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컸고 가격 저항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알아서 주세율을 엄격히 통제한 측면도 있다. 소주의 원료인 주정값이 오르는 것도 정부가 오랜 기간 통제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가격은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면 따라 오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주는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희석식 소주’ 그대로다. 진로 관계자는 “희석식 소주로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한때 비싼 소주가 등장했었다. 97~98년 때다. 이때 소주업체들은 ‘참나무통 맑은 소주(진로)’ ‘김삿갓(보해양조)’ 등 프리미엄 소주를 내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일반 소주가 음식점에서 2500~3000원일 때, 프리미엄 소주는 4000~5000원을 받았다. 하지만 프리미엄 소주는 외환위기와 함께 ‘통째로’ 사라졌다.

소주업체들은 최근 저도수 소주와 함께 다시 프리미엄 소주를 속속 내놓고 있다. 맥주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맥주는 처지가 달라진 게 이유다. 고급주에서 대중주로 변했다는 얘기다. 맥주는 1970년 초만 해도 비싼 술이었다. 소매가(640㎖ 1병 기준)가 200원으로, 돼지고기 600g 값(260원)에 육박했다.

맥주 한 병을 수퍼에서 살 돈으로 자장면 세 그릇을 사먹을 수 있었다. 77년에 맥주 판매량은 약 2000만 상자였다. 하지만 2002년 맥주 판매량은 2억 상자를 돌파했다. 이 사이 맥주 주세율은 대폭 인하됐다. 90년대 140%였던 주세율은 2004년 100%로 떨어졌고, 이후 2년 동안 매년 10%씩 내려 현재는 72%다.

하이트맥주 관계자는 “88올림픽 때 연간 1억 상자를 돌파하고 맥주가 대중주로 자리 잡으면서 다른 소비재에 비해 인상이 제한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맥주값 역시 두터운 가격 저항선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에서 제외됐지만 담뱃값도 최근 몇 년을 제외하면 인상폭이 크지 않은 품목이다.

1969년 2월 100원에 판매되기 시작해 당시 최고급 담배로 불렸던 ‘청자’는 10년간 50원 오르는 데 그쳤다. 74년 발매 당시 150원이던 ‘한산도’도 15년 동안 두 배 정도 올랐다. 현재 담배 가격이 2000~25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35년간 20배 안팎 오른 것이다.

그나마 90년대 담뱃값이 600~1600원이었고, 2000년 들어 정부가 담뱃값을 대폭 인상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담배 역시 직장인들의 주머니 부담을 덜어준 상품이었던 셈이다.

김태윤 기자[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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