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점검중단… 왜 일어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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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대피소없는 1호선 지하분기부/열차 살피며 목숨걸고 점검 강요/애당초 설계잘못 정비규정도 위반/겉치레검사 불가피 대형사고 위험
지하철선로 보선작업도중 대피시설이 없어 열차에 치여 숨진 보선원 변병일씨(34)사건과 관련,나흘째 계속되는 지하철안 전점검중단 사태는 지하철 건설·운영의 파행성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대적인 안전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러나 지하철공사 고위 간부들은 대피시설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개선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심지어 변씨 사망을 개인의 부주의로 발생한 우발적인 사고로 추정하는등 책임회피에만 급급,동료보선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설계·건설잘못=서울지하철건설 규칙은 지하분기부에 대피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으나 74년 개통된 지하철1호선은 이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채 건설돼 애당초 선로점검과 보선원안전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또 지하철선로정비규정 제102조도 터널·교량,기타 열차를 피하기 곤란한 장소에는 20m이내의 거리에 대피소를 설치토록 하고 있다.
◇분기부 작업=지하철 안전내규 제60조는 작업금지구역에서 열차운행간격을 확인하면서 선로순회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선원들은 애초에 정상적인 대피가 불가능한 분기부에서의 위험한 작업을 강요당하고 있다.
보선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오가는 열차를 의식하면서 형식적인 점검만 하거나 아예 제대로 점검도 하지 않고 뛰어서 분기부를 벗어난다』며 『레일파손으로 인한 대형사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기부가 운행시간에는 가장 허술하게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타지역 대피=분기부를 제외한 부분에는 폭 40㎝정도의 기둥이 있고 손잡이가 달려있어 전동차 접근시 대피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제대로 된 대피시설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공사안전지도실에서 89년 8월 발간한 안전교육 교재의 사고사례중에는 86년 8월12일 오전 10시55분 4호선 신용산역구내에서 열차진입시 기둥사이로 대피한 보선원이 선로쪽으로 머리를 내밀다 두개골파열상을 입은 사고도 있다.
보선원들은 특히 지하구간내의 각종 공사로 인한 적치물이 기둥사이에 놓여 있어 최소한의 대피조차 불가능한 곳도 많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사고사례=지하철공사 간부들은 변씨 사망이 1호선 개통이래 첫 보선원 사고로 대피시설 미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 과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81년 6월 지하철 2호선 신답∼기지역구간에서 이철우씨가 선호순회점검중 열차에 치여 숨졌고 83년 4월 2호선 성내∼잠실구간에서 김관식씨,87년 5월25일 2호선 서초∼방배역구간에서 김득수씨(35)가 각각 열차에 치여 숨지는등 3건의 보선원 사망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또 86년 8월12일 오전 10시55분 신용산∼삼각지역구간에서 보선원 최영용씨가 기둥사이로 대피했다 머리를 내밀어 두개골파열상을 입었다.
신호원으로는 84년 2월 송관석씨가 신설동구내에서 85년 4월 뚝섬∼성수역구간에서 박기선씨가 신호기보수점검도중 열차에 치여 숨졌다.
설비원으로는 90년 11월 이승기씨가 노원역구내에서 작업중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보선원들은 이밖에도 많은 부상사고가 있었다며 따라서 변씨 사망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고 대피시설 미비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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