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경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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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작년 여름 광개토대왕릉비 학술조사단을 따라 집안으로 가는 길에 백두산 천지에 오른 일이 있다.
그날은 마침 8월15일. 우리나라에서는 광복절이지만 중국의 조선족에서는 노인절로 통하는 명절이다. 온 마을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춤과 노래로 하루를 즐기는 날이다.
그런가 하면 가족과 이웃이 한패가 되어 백두산 천지를 찾는 동포들도 적지않다. 그들은 음식과 과일을 싸들고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그리고 천지에 이르면 그중 여인네들은 가지고 온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사진을 찍는다. 그것은 마치 성지를 찾아나선 순례자와도 같은 경건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대연에서 왔다는 한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백두산에는 자주 옵니까.』 『무시기 말씀. 벼르고 벼르다 처음 왔습네다. 여기서는 백두산을 보지 못하면 조선족이 아니지요.』 그녀는 비로소 조선족이 되었다는 자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살짝 웃었다.
그들에게 있어 백두산은 꿈에도 잊지 못하는 두고 온 산하,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그러나 백두산은 우리에게도 단순한 산이 아니다. 겨레의 모태며 신앙이다. 그래서 육당은 일찍이 「백두산기행」이란 글에서 『백두산은 조선일체의 집약이며 조선 최고의 전활적 가치이며 조선만의 절대적 정화이기에 조선인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고 메고 가서도 안되고,또 속에 놓고 생각하며 가도 안된다』고 했다.
만고에 침묵한채 성전을 토하는 백두산이야말로 바로 우리 겨레의 종교며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그 겨레의 성지 백두산이 언제부터인가 중국과의 국경분쟁에 휘말려 영유권이 모호하게 돼 있다. 우선 1712년에 청이 세운 정계비만 해도 백두산과 그 북쪽의 간도일대를 우리 땅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을사조약이후 일제의 농간으로 우리는 북간도를 잃게되고 백두산의 경계마저 잠식되었다. 더구나 6·25를 거치면서 북한 당국은 천지의 절반을 중국에 할양한 것으로 밝혀져 민족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오늘 연합통신은 프랑스의 르 피가로지 기사를 인용,북한이 「공산주의 노선유지」의 감사표시로 백두산을 모두 중국에 양도한 것으로 보도했다. 북한이 스스로 「혁명성지」라 일컫는 백두산을 선뜻 중국에 내줄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가닥 기우가 앞선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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