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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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올해가 끝이겠구나 하면

또 밀고 올라오는 것

자신을 모두 밀어 올려

가난의 끝에 까치발을 하고 서 보는 일

허리가 아프도록 서서

큰소리로 한 번 우는 것

세상의 슬픈 것들은 이다지도 높아

소리마저 절멸한 곳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난한 끝에

꽃 한 송이 피워 올리는 일

층층나무 한 그루를 오래 만지다 오는 길

오오, 보살이여

깨끗한 절벽이여

누군가의 무동을 타고 잠깐 본 허공이여.



철교 밑에 뽀얗게 흰 꽃 피었네. 가장 연약하고 가난한 지점에서라야 아름다움을 밀어 올릴 수 있는 생. 벙어리라야 소리의 끝에, 장님이라야 절벽의 끝에 매달릴 수 있네. 자살 아니면 꽃. 탄생 아니면 열매. 전동차가 지날 때 꽃의 무동을 타고 잠깐 본 사람이여. 보이지 않는 반달의 허공, 검붉은 열매 저편의 눈물 많은 아비들이여.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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