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연금 살리기 한달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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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 대립은 한마디로 코미디 수준이다. 지난 대선 때 국민용돈제도를 만들 수 없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급여를 낮추고 보험료를 올리는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대선 때 연금개혁을 주장하던 한나라당은 이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코미디를 바라보고 있는 국민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국민연금제도는 평균소득자가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자신이 낸 돈의 두배 이상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처럼 조금 내고 많이 받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재정적자와 파산은 필연적이며, 이는 후세대에 그대로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지금 20대 이하 세대가 퇴직 후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지금의 9%에서 30%로 올려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높은 보험료 부담을 지지 않을 경우 평생 동안 보험료를 내고도 은퇴 후에는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현재로서는 정부의 국회 상정안대로 급여수준을 60%에서 50%로 줄이고 보험료를 9%에서 점진적으로 16%까지 높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다만 국회 상정안에 비해 급여를 높이려면 보험료를 조금 더 높이거나(60% 급여-20% 보험료), 보험료를 낮추려면 급여를 조금 더 낮추는 식(40% 급여-12% 보험료)의 수정은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행 60% 급여수준을 유지하면서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는 대안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처럼 조금 덜 받고 더 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국민연금을 바로잡는 데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지 않았었다. 특히 국민연금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할 정치인들은 지지도가 하락할 것을 두려워해 국민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임무를 방기해 왔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이를 악용해 '급여를 줄이지 않거나 더 늘리겠다면서' 국민을 호도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과정은 국민연금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유포되고, 불신과 불만이 늘어나는 원인이 돼왔다. 그럼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을 바로잡고 노후소득보장을 제대로 기능케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후보 시절의 주장을 번복할 수밖에 없게 된 점을 사과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한나라당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연금 바로잡기에 앞장서야 한다. 국민연금에 관한 한 인기영합주의나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히고 설득해야 한다.

둘째, 급여수준과 보험료 조정을 통해 현행 국민연금을 바로잡은 후에는 국민연금이라는 우산 밖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각지대 국민을 위한 기초연금제도 도입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셋째,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에 대비해 국민연금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노후 소득보장체계에 대한 연구를 위해 제대로 된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노인들의 소비.저축, 그리고 은퇴 후 생활 등에 대한 연구가 고령패널이라는 데이터를 기초로 해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이런 자료 하나 없이 수없이 많은 주관적 주장만 있을 뿐이다.

일부에서는 논란이 많은 국민연금법 개정을 내년 이후로 미루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급여와 보험료 조정은 올해 하지 않으면 5년 후에나 할 수 있다. 그런데 2008년이 되면 노령연금 급여 지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해결해야 할 적자폭이 지금보다 크게 증가한다. 이에 따라 급여나 보험료 조정폭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으며, 국민 부담도 그만큼 더 많아지게 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올해도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 한달이 국민연금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진실만이, 그리고 냉철한 이성만이 위기에 빠진 국민연금을 구해낼 수 있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