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연두색 푸조 307과 빨강 르노 메간은 딱 어울렸습니다. 앞바퀴에서 범퍼까지의 거리(오버행)가 길어 피노키오 코를 연상시키는 푸조의 유선형 자태나 풍만한 여인의 뒷모습을 연상시키는 르노 메간 같은 차들은 파리와 찰떡 궁합이었죠. 거대한 벤츠 S클래스나 에쿠스 같은 차들이 이 거리에 있다면…. 생각만 해도 어색합니다. 이번에는 독일입니다. 시속 200㎞ 이상 질주할 수 있는 아우토반에선 푸조.르노는 왠지 연약해 보입니다. 균형미와 절제미(짧은 오버행이 특징)를 내세운 벤츠.BMW.아우디가 제격이죠. 액셀을 밟으면 쏜살같이 반응하고 브레이크는 정확합니다. 사이드 미러에 포르셰의 둥근 헤드라이트가 보이면 달리던 차선을 얼른 비켜 줘야 하죠.
미국은 어떨까요. 고속도로는 잠깐 졸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을 만큼 끝 없는 직선입니다. 미국인들은 자동차로 수천㎞를 달려 대륙을 횡단하곤 합니다. 장시간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덩치도 커야 하고 의자는 푹신합니다. 잽싼 코너링보다는 편안한 승차감이 중요하죠. 그리고 시속 200㎞ 이상 달려야 할 일도 별로 없어 넉넉한 힘이 나오는 큰 엔진을 단 차가 인기였지요. 특히 예전 캐딜락이 그렇습니다. 뒷좌석에 앉아 높은 벨트라인(도어 윈도의 높이)에 몸을 숨기고 슬쩍 창문을 내려 바깥 세상을 보는 그런 멋이죠.
그럼 한국 도로에는 어떤 차가 어울릴까요. 가장 많이 팔리는 쏘나타.아반떼일까요. 한국엔 전통 기와집이 몰려 있는 지역도, 옛 정취를 느낄 흙길도 드뭅니다. 신도시건 농촌이건 모두 거대한 아파트 단지입니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는 뉴욕보다 더 번잡하고 도로도 넓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느낌이 확 전해지죠. 그런데 이런 다이내믹한 거리와 궁합이 맞는 차는 없어 보입니다. 현대.기아차의 숙제인 셈입니다.
김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