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하다 참변(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성탄절인 25일 아침.
미용사인 김숙진씨(30·서울 답십리동)는 『오늘만은 쉬는게 좋겠다』는 남편(31)의 만류를 뿌리치고 직장인 시립대앞 미용실로 발길을 재촉했다.
결혼 3주년 기념일이라는 사실을 모를리 없지만 임신 6개월된 둘째아이에게 내집 한칸 없는 부모가 되기 싫어서였다.
점심을 마치고 1시간쯤 지났을까.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학동창들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축하할겸 친구집에서 조촐한 부부동반 파티를 연다니 좀 빨리 퇴근하는게 좋겠어.』
바삐 서둘렀는데도 오후 8시가 돼서야 일이 끝났다.
김씨는 미용실앞에서 남편 친구집이 있는 면목1동행 시내버스를 탔다.
이날따라 시내에서 휴일을 즐기고 귀가하는 승용차가 유난히 많은데다 비까지 내려 버스는 평소보다 15분쯤 더걸려 오후 8시40분쯤 면목1동 청구부동산앞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남편친구집까진 길을 건너 3백여m. 횡당보도는 1백m쯤 떨어져 있었다.
우산을 받쳐든 김씨는 좀더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에 왕복 4차선 도로를 가로질렀다.
순간 1백여m쯤 떨어져 멀리 보이던 스텔라 승용차(운전사 정태종·51)의 급브레이크 소리가 요란했다.
갈비뼈 대부분이 부러진 김씨는 피투성이로 부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졌다.
2살난 아들,올해는 시아버지 아파트에서 나와 내집 힌칸 마련 하겠다는 남편의 얼굴도 보지 못한채….
『설마 차가 피해가겠지.』
『설마 비오는 밤에 무단횡단 하는 사람이 있을라고.』
「설마」하는 생각이 가해자(구속)와 피해자 두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은 일순간이었다.<최형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