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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치기 25년/구세권 허규현참령(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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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옷긴여민 온정」넘칩니다/구세군 허규현 참령/매년 영세민등 4만여명 도와/불우이웃 생각 과소비는 그만
또 한해가 저문다. 그 세모의 거리에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시린 겨울날씨를 업고 도심에 흩어져 있는 시민들의 사랑과 온정을 담아올리는 자선냄비. 사람들은 감색 구세군 제복의 손에 들린 종소리를 듣고 문득 자신과 잊고있던 가난한 이웃을 떠올리며 옷깃을 여미곤 한다.
자선냄비는 이제 세모의 풍경을 그리는 도시인들에겐 그 구도속에 한부분을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아름답고 정겨운 향수의 정서로 작용하게끔 됐다.
자선냄비운동은 지금부터 1백년전인 1891년 폭풍 조난선의 생존자 구호를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해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일제하인 1928년 12월 당시 구세군 사령관으로 있던 박준섭(조셉바)정령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60여년. 그동안 자선냄비는 한해 겨울도 거르는 법 없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거리마다 나타나 세모의 추위를 훗훗한 인정과 사랑으로 녹여왔다.
구세군 서대문영의 담임사관인 허규현 참령(55)은 구세군 사관학교에 입교하던 67년부터 지금까지 25년동안 해마다 세모의 거리에 나가 가난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냄비 가두모금의 종을 쳐온사람이다.
『가난한 우리 이웃을 도웁시다.』 올해도 꼬박 하루 두시간씩 가두에 서서 구호를 외쳐대느라 그만 목소리마저 쉬어버렸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사랑의 마음씨를 잃지않고 그 온정이 냄비를 온통 끓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면 일신의 고단함이 씻은듯이 가십니다』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마다 자선냄비가 등장해 세모가 가까웠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사랑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한지도 벌써 10여일이 지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올 모금계획은 어떤지 좀 들려주시지요.
▲올핸 6일 오후 1시부터 24일 자정까지 19일간을 모금기간으로 정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64개지역에 모두 1백54개의 자선냄비를 설치해놓고 주말(오전 11시∼오후 9시)을 빼고는 매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6시간씩 3개조가 돌아가며 모금활동을 펴고있어요.
여기 동원되는 인력만 연1만6천명인데 이들이 모두 자원봉사자예요.
­금년도 모금목표액이 5억5천만원이라고 들었는데 정해진 기간안에 무리없이 그걸 채울 수 있을는지요. 특히 일각에선 불우이웃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예년보다 많이 시들었다는 개탄의 소리도 들려오고 있는 시점에서….
▲올해 목표액을 5억5천만원으로 잡으면서 조금 걱정이 됐던건 사실입니다. 작년 모금액이 4억원 남짓이었으니까 무려 35% 넘게 목표액이 상향조정된 셈이거든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추세로 미루어볼때 결과를 낙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시민들의 참여의식이나 호응도가 아주 높아요.
­모금된 돈은 대개 어떻게 쓰여집니까. 작년 경우를 예로든다면…
▲모금된 돈은 우리 구세군 사회부의 주관 아래 영세민과 각종 긴급재해민을 구호하거나 사회복지시설,장애자 및 군경복지사업을 지원하는 일에 주로 쓰여집니다.
시설·단체만 전국 20개소,총4만5천명 가량의 불우한 우리 이웃이 많건 적건 자선냄비를 통한 모금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60년대 후반부터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적극 참여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잊지못할 사연도 많으시겠지요.
▲많고말고요.
80년인가,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자선냄비 모금을 할때였어요. 스님 한분이 우리 바로곁에 시주함을 놓고 하루종일 목탁을 두드리며 탁발을 해요.
좀 묘한 느낌이 들긴했지만 개의치말고 우리 일이나 하자고 했는데 웬걸요,저녁때 주섬주섬 자리를 치우던 그 스님께서 그날 탁발한 돈을 몽땅 가져와 우리 냄비속에다 털어넣는거예요. 그러면서 『참 좋은일을 하십니다』그래요. 제가 그만 감격했습니다. 제몸을 버려서라도 가난한 이웃중생을 먼저 돕겠다는 종교인의 성인정신을 그때 비로소 본 느낌이었어요.
역시 80년대초의 일로 기억됩니다만 깨끗한 봉투속에다 10만원짜리 수표를 넣어 서울시내 자선냄비함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돌아다니며 넣던분이 계셨어요. 그게 보통일이 아니지요. 그래 수표를 추적해 누군가를 알아봤더니 어느 병원의 의사선생님이었어요.
우리 본영의 관계자 몇사람이 그분에게 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요. 그런데 그분 반응이 영탐탁질 않아요. 드러내고 싶지않은 일에 구세군 사관님들이 공연한 수고를 하고있다는 거지요.
10년이 지나도록 그때일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어떤사람들이 모금에 호응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까.
▲60,70년대만 해도 냄비에 돈을 넣어주고 가는 사람은 청소년층이 주류였어요. 그땐 나이든 사람이나 얼핏보아 남을 도와줄 푼수는 되겠다싶은 사람들은 오히려 참여를 안했어요.
그러나 요즘들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노소·계층의 구분없이 전체적으로 갈수록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지나가던 엄마들이 서너살밖에 안된 아기를 시켜 냄비에 돈을 넣게 하는걸 지켜보면 어릴때부터 이웃을 도우며 사는 착한 마음씨를 길러주려는 교육의 진면목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됩니다.
또 사람들이 전에비해 무척 진지해졌어요. 함에다 장난삼아 종이를 구겨넣거나 하는 짓들도 거의 없어졌고,오히려 깨끗한 봉투를 준비해와 주일날 헌금을 하듯이 정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국민들의 과소비 행태로 말들이 많습니다.
▲생활형편이 전반적으로 나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 사회에는 아직 그늘속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걸 생각해야겠어요. 한켤레에 15만원씩 하는 스타킹을 신는 여자도 있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돈이면 정말 가난한 한집안이 반달은 먹고살 수가 있어요. 흥청망청 헤프게 돈을 써대는 사람일수록 이웃생각은 요만큼도 않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반성해야해요.<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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