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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 당연히 나눠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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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차전지연구센터의 조병원 박사가 전지 용액을 섞으면서 초시계로 시간을 재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차전지연구센터 기술직 연구팀원인 강택관(49)씨는 요즘 신이 났다. 연구책임자인 조병원(51) 박사가 최근 받은 로열티로 쏘나타 승용차를 사 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12년이 된 자동차를 탈 때마다 새 차를 사야겠다고 별렀지만 그게 쉽지 않았던 강씨다. 그러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조 박사로부터 자가용이 굴러들어온 것이다.

강씨처럼 '횡재'를 한 사람은 같은 팀원인 김형선(50) 박사도 마찬가지다. 김 박사도 조 박사로부터 쏘나타를 받았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조 박사 연구팀은 조 박사의 통큰 로열티 분배로 온 연구실이 함박웃음으로 가득했다. 강택관씨와 김형선 박사 외에도 A 연구원 1700만원, B연구원 750만원 등 직간접으로 조 박사 연구에 발을 담갔던 사람들은 두툼한 봉투를 조 박사로부터 건네받았다.

조병원 박사가 이차전지 기술을 두 개 기업에 이전한 대가로 지난해 말과 올 1월 등 두 차례 받은 로열티는 3억원. 이 중 절반은 연구소에서 떼어 가고, 나머지 1억5000만원 정도가 조 박사한테 넘어왔다.

연구계 관행에 비춰보면 연구팀원에게 200만~300만원씩 나눠주면서 생색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연구책임자가 가져가야 맞다.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연구 책임자로부터 나오고, 연구 과제 역시 연구책임자가 수주해 오는 등 연구책임자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열티 분배도 연구책임자에게 일임하는 게 관행이다.

조 박사는 자신이 받은 로열티를 어떻게 나눴는지 자세히 밝히길 주저했다. 그러나 드러난 것만 자신 몫의 55~60%인 8000만~9000만원을 팀원들에게 떼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조 박사팀은 다른 연구실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렇게 팀원들에게 후하게 로열티를 나눠준 사례는 KIST 창립 40여 년 동안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한 연구원의 말이다. 물론 다른 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조 박사는 "연구 성과에 따른 로열티가 있으면 고생한 팀원과 함께 나누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앞으로 더욱 연구에 박차를 가해 팀원에게 강남지역 아파트는 아니어도 적당한 아파트 한 채씩 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로열티 독식 문화를 거부한 그다운 생각이다.

그는 화학공학 중에서도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에 쓰는 이차전지 개발이 주력 연구테마다. 이번에 로열티를 그에게 안겨준 기술도 지금의 이차전지보다 용량이나 안전성이 크게 개선된 차세대 이차전지 관련이다. 조 박사가 가지고 있는 특허는 130여 개에 달한다. 그는 요즘 특허를 출원하는데도 아주 신중하다. 기술이 유출될까봐서다.

"연구는 상용화 쪽에 목표를 맞춰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연구 논문을 쓸 때는 연구할 때 잘된 것 몇 개만 골라 발표하지만 상용화하려다 보니 안 되는 것만 골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몹시 어렵습니다."

조 박사는 상용화로 연결되지 않은 기술은 죽은 기술이라고 말했다. 연구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도 팀원들에게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는데 실패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안심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휴일은 철저히 쉬려고 하지만 주 5일제가 되면서 너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연구는 시간 싸움인데 쉴 것 다 쉬면 성과를 내는 데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일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일 12시간씩이 기본이다.

또 연구실에서 안 풀리는 문제와 그 다음주 해야할 일 등을 주말에 집에 가지고 가 정리해 월요일에 팀원들에게 풀어주고, 지시할 건 한다. 술.담배를 거의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축구로 푸는 그다. 축구를 하면서 패스해 달라는 소리를 많이 해 '입으로 공 다 찬다'는 동료의 농담도 듣지만 그는 개인 플레이보다 팀워크를 좋아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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