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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 김명민 "요즘 관심사는 둘째 갖는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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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하얀거탑>의 연출자 안판석 PD는 “이 드라마는 결국 실리를 택할 건지. 아니면 가치를 좇을 건지에 대한 얘기”라고 요약했다. 이 두가지를 모두 손에 넣으려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 장준혁 외과과장은 어쩌면 욕망을 위해 내달리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상을 위해 소중한 의미를 애써 외면하는 그를 보며 시청자들은 자기의 일처럼 안타까워했고 슬퍼했다. 드라마 종영 후 만난 김명민은 눈이 움푹 파일 만큼 초췌했지만 박력 있었다. 이 남자. 데뷔 10년 만에 팬클럽 창단식도 했단다. 이번주 취중토크의 주인공 김명민을 서울 신사동의 와인바 ‘&바’에서 만났다.

●노래방 애창곡은 <흔들린 우정>

오후 6시. 김명민은 짬뽕을 후루룩 먹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인터뷰 때문에 이제서야 첫 끼니를 챙겨먹는 중이라고 했다. “짬뽕 좋아하시나 봐요?” “아니요. 짬뽕밖에 안 된다고 해서요.” 싱거운 대화 몇 마디가 오고간 뒤 레드와인이 세팅돼 나왔다. 안주는 찹스테이크와 과일.

장준혁 과장이 후배들과 자주 들르던 드라마 속 와인바가 연상됐다. 장 과장의 세컨드인 희재(김보경)의 와인바는 병원 상사에 대한 뒷담화와 험담. 권모술수가 나도는 축축한 곳으로 묘사됐다. 냅킨으로 입을 쓱쓱 닦은 김명민이 입을 열었다.

“여기 오니까 또 뭔가 역적모의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네요. 하하. 와인바보다는 일식집이 적나라했죠. 일식집 세트에 새 멤버가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김창완·정한용 선배가 ‘여기 발 디디는 순간부터 너도 타락하는 거야’라고 말해 모두들 배꼽을 잡았어요. 진짜로 멀쩡한 사람도 일식집에만 들어오면 눈빛이 야비해졌죠.”

기자의 잔에 와인을 가득 따라준 김명민은 “드라마에선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사용했다”며 “따를 때 거품이 안 나도록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가볍게 건배한 뒤 첫잔. 애주가는 아니지만 김명민은 1년 중 며칠은 작정하고 폭음을 한다고 했다. 드라마 쫑파티 때가 바로 그날인데 며칠 전 <하얀거탑> 쫑파티 때도 인사불성이 될 만큼 마셨고. 팬클럽 창단식을 한 어제도 필름 끊기기 일보직전까지 마셨다고 한다.

“쫑파티 때는 테이블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한 잔씩 해요. 소주로 따지면 거의 6~7병쯤 마시죠. 나중엔 술이 물처럼 무감각해지잖아요. 어제도 너무 기분이 업돼서 과음을 했네요.”

이날 팬클럽 창단식에는 특별히 이정길이 다리를 놓아 가수 이문세까지 왔다. 처음 만난 사이인 두 사람은 이날 10년지기처럼 어깨를 겯고 막춤을 춰 팬들을 즐겁게 해줬다. 김명민은 엔딩 무대에선 아들 재하(4)까지 불러내 춤을 췄다. 그의 애창곡은 <마이웨이><흔들린 우정>이다.

●‘죽비’ 같은 모니터 요원들

좋은 배우는 역할에 몰입을 잘하는 배우보다 잘 빠져나오는 배우라고 하던데… 김명민은 어떨까. “어휴. 전 아직 멀었나 봐요. 일본에선 1978년판에서 자이젠(장준혁의 오리지널 역할명)을 연기한 배우가 자살했다잖아요.

저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당분간은 장준혁의 그늘에서 못 벗어날 것 같아요. 장준혁과 굿바이하려면 사실 이런 인터뷰도 안 해야 하는데… 하하. 4월부터 촬영하는 영화 <파트너>가 시작돼야 장 과장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출세욕에 눈이 멀어 동료를 배신하고. 의료사고를 은폐하고. 게다가 바람까지 피우는 이 남자를 시청자들은 왜 연민했을까. “공감대겠죠. 특히 조직 생활하는 남자분은 100% 공감하셨을 거예요. 내색하진 않지만 회사에 이주완 과장과 최도영 교수 같은 사람이 있는 거죠. 장준혁이 외과과장 됐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셨대요.”

네티즌들은 서운할지 모르지만 김명민은 홈페이지 게시판의 글을 전혀 안 본다고 했다. 이유는 좋든 싫든 그 글에 갇히게 되고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란다. 대신 김명민은 오래전부터 10여 명의 전담 모니터 요원을 곁에 두고 있다. 친분있는 연출가나 선후배로 구성된 이들은 피눈물 없는 직설화법으로 김명민에게 자극을 주는 ‘죽비’ 같은 존재들이다.

“칭찬은 기대 안 해요. <하얀거탑> 때도 ‘그 장면에서 시선 처리가 왜 그 모양이었냐’ ‘그때 졸렸냐’처럼 등골 서늘한 얘기를 많이 해줘요. 물론 서운할 때도 있지만 유익한 각성제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탤런트면 난 미스코리아다”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장 과장이 숨을 거두는 엔딩 신이었다. “그 장면 찍고 다들 얼싸안고 엉엉 울었어요. 가슴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올라오더라고요.”

무명 터널이 길었던 김명민은 “그 순간 나를 주연으로 발탁해준 MBC TV <뜨거운 것이 좋아>의 김남원 PD와 KBS 1TV <불멸의 이순신>의 이성주 PD 얼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저를 매몰차게 대했던 분들도 은인이에요. 그만큼 제가 단단해졌으니까요.”

와인잔이 몇 번 바뀌고 서로의 얼굴이 발그레해질 무렵 궁금했던 아내 얘기를 물었다. 그가 아내를 처음 만난 건 1998년 홍대 근처의 한 식당에서였다. 합석한 선배 일행 중 한 명이었는데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저보다 한 살 많은 연상이에요. 첫눈에 반한 건 아니지만 똑똑하고 야무진 게 볼수록 괜찮더라고요.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안부를 물으면서 친구처럼 지냈죠. 그 친구가 귀국할 때마다 제가 차 가지고 공항에 나가고 그랬죠. 2000년 용기를 내 전화로 ‘이제 그만 귀국하시지’라고 말한 게 청혼이었던 것 같아요. 쑥스럽네요. 하하.”

흥미로운 건 연예인을 싫어한 아내 때문에 김명민이 2년간 탤런트라는 직업을 숨겼다는 사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양화선착장에서 ‘사귀자’고 말하며 제 정체를 밝혔어요. 헤어질 각오를 하고 ‘실은 나 탤런트였다’라고 말했더니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던 그 친구가 ‘네가 탤런트면 난 미스코리아’라며 콧방귀를 뀌는 거예요. 도무지 믿지 않길래 자동차에 있던 SBS 탤런트 신분증을 갖고 와 ‘이래도 안 믿을래’라며 내밀었죠.”

그해 MBC TV <뜨거운 것이 좋아>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듬해 6월 결혼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전세 1억원짜리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차렸고. 내집장만은 결혼 2년 만에 해냈다. “신혼살림은 양가 부모님께 10원 한푼 도움 안 받고 우리 힘으로 꾸렸어요. 아버지가 호텔경영 쪽 일을 하셨는데 혼수나 예물 모두 간소하게 하자는 저희 뜻에 따라주셨어요. 어머니도 쿨한 성격이셔서 ‘며느리 고생시키지 말자’며 폐백도 안 했어요.”

●요즘 최대 관심사는 둘째 임신

지금 살고 있는 한남동으로는 아들 때문에 이사했다고 한다. 전에 살던 아파트가 21층이라 재하가 정서 불안 증세를 보였고. 엘리베이터 점검이라도 하는 날이면 꼼짝없이 계단을 이용해야 해 불편하던 참이었다.

“자연을 접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정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집 근처에 공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사를 한 거죠. 무역일을 하는 아내도 직장이 역삼동이라 가까워졌고요. 드라마에선 부잣집 동네로 나오지만 제가 사는 곳은 부촌 아니예요. 한강도 안 보여요. 헤헤.”

집에선 어떤 아빠일까. “딱 한 시간짜리 아빠죠. 재하랑 침대에서 씨름하는 걸 좋아하는데 한 시간만 지나면 슬슬 지쳐요. ‘엄마 지금 뭐하나 보자’라며 슬쩍 공을 넘기죠. 이 세상 엄마는 위대한 존재예요. 팔불출 같지만 현명한 아내 덕을 많이 봅니다. 드라마 촬영 시작되면 자기 남편이라고 생각 안 한대요. 자유방임형 아내로 돌변하는 거죠. 새벽 4시에 귀가해도 꼭 다음날 촬영할 대본을 보고 자는데 아침에 늦잠 방해할까 봐 재하 데리고 산책 나가는 사람이에요. 늘 고맙고 미안하죠.”

아내에 대한 애틋함은 늘 여행으로 보답한다. 드라마 최종회가 다가오면 아내는 인터넷으로 휴가지를 물색하느라 바빠진다. <하얀거탑> 때도 김명민은 최종회가 다가올수록 예민해졌지만 그의 아내는 “여보 이번엔 어디로 갈까”라며 콧노래를 불러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고 한다.

“마침 5박6일짜리 화보 촬영이 생겨서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요. 가족여행을 겸할까 합니다. 가족 사진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 세 사람이 모두 담긴 사진을 담아오는 게 소박한 목표예요. 재하 엄마가 ‘우린 가족 사진도 없는 가족’이라며 노래를 불렀거든요.”

‘리허니문’이 될 발리에서 둘째 계획을 세우는 건 어떠냐고 묻자. “그렇잖아도 요즘 최대 관심사가 그것”이라며 맞장구를 친다.

“사실 <하얀거탑> 찍을 때 노력해 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아들이 클수록 아빠를 빼닮으니까 아내가 내심 딸을 하나 낳고 싶어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마음처럼 쉽게 안 되네요. 하하.”<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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