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치」로의 전환 절실한 과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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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은 국내 정치에도 민감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안자체가 워낙 중대한데다 우리 정치판이 유달리 예측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충격이 큰 것은 당연하리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권의 1차적 반응을 듣고 좀더 수준높은 정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겠느냐는 아쉬움을 갖는다. 정치권에서 흘러 나오는 논의들은 이번 합의를 놓고 주로 개인 또는 정파의 손익계산을 따지는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이를테면 남북돌파구로 가장 덕을 볼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이라느니,후보 조기가시화를 요구하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나 정권교체를 노리는 김대중 민주당 대표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는등 논점이 극히 미시적이고 이해타산에 치우쳐 있다.
물론 이같은 분석을 무턱대고 백안시하거나 나무랄 수 만은 없는 점을 인정한다. 그같은 이해대립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발상의 틀 역시 크게 현실을 벗어났다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와 연계시켜온 언짢은 기억들을 갖고 있다. 7·4공동성명뒤에 숨어있었던 유신의 음모는 말할 것도 없고 그후 정권들 역시 내치의 어려움을 외교나 통일문제로 상쇄하려는 듯한 인상을 누차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그렇게 해 온것이 한국적 정치의 한 속성이었다고 하더라도 눈앞에 다가선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자기혁신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는다. 우물안 정치나 음모정치가 배격되지 않고는 국민적 신뢰와 에너지 집결은 불가능하다는 뜻에서다.
우물안 정치,음모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치가 소수의 권력추구자들에 의해 변칙적으로 좌우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가 국가적 이해갈등의 조정보다 권력쟁탈에 더 몰입하는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사건건 물밑에서,혹은 등뒤에서 할퀴며 눈앞의 잇속이나 챙기는 지도자군의 행태들이 통일문제를 앞에 놓고 그대로 다시 드러난다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우리 정치의 질적변화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그토록 외쳐만 온 「큰 정치」는 어디로 갔는가. 분단 45년을 청산할 역사적 호기가 오는데도 정치는 여전히 소수의 권력다툼에 머무르고 있을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이 시점에 큰 정치의 개념을 결코 거창한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모든 정치행위에 적어도 통일을 염두에 두는 각성운동이 일면 족하다. 통일정책은 이성적 판단과 합리성을 전제로 냉철히 추진되는 것이 요체다.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는 핵심원리는 공존에 대한 합의에서 출발한다.
각 정치세력들이 통일이란 큰 목표와 접근원리에 충실하다면 대권이니,선거니 하는 과정의 정치가 덜 살벌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고 통일문제조차 구태의연한 한건주의 정치의 대상으로 농단된다면 그런 정치는 역사의 심판을 받고 말 것이다.
통일과업을 독일의 정치가 어떻게 다뤄왔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독국민의 단합과 튼튼한 경제기반을 다지는데 기울인 독일 정치인들의 헌신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정파가 달랐지만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콜에 의해 성실히 계승됐다.
그들은 누구도 「최선의 통일」을 추구했지 나의 공을 앞세우는 「빠른 통일」을 탐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의 원칙고수와 체제안정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통일도 세계사적 흐름에 남북의 통일역량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통일역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와 경제를 안정시키는 정치일 것이다. 그것없는 통일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남북합의서 체결을 보고 일각에서는 여당에 의한 내각제개헌 추진과 대권구도의 변용을 점친다. 또 청와대 대변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우리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씻어주어야 한다.
천재일우를 맞아 정치권은 좀스러운 정치를 지양할 것을 간절히 바란다. 국민과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통일에 사적 이익을 결부시키는 사람과 정파가 있다면 그런 사람과 집단은 과감하게 도태시켜야 한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참여를 위한 수단이지 소수의 정치적 야심을 달성하는 도구가 아니다. 지도자는 목표의 도덕성과 함께 수단의 도덕성을 잊지 않고 대국을 포착하는데서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정치인과 정치의 역사적 책무는 더욱 가파른 언덕에 서 있다. 「큰 정치」로의 전환을 엄중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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