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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이 「합의서」 장래 좌우(남북 화해시대: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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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와 맞물린 안보/북 언질 공식화에 국내외 관심 집중/남선 최대한 양보… 연내 타결돼야 대화 순항
남북이 13일 고위급회담을 통해 서명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92년 2월18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6차 고위급회담중인 19일 문본을 교환,발효된다.
또 이 합의서 내용을 실천할 기구와 그 운영방안등 세부사항을 이달부터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6차 고위급회담에 앞서 판문점에서 열리는 실무대표회담은 이 합의서 시행에 관한 부분과 핵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 두가지다. 합의서관계 회담은 발효후 1개월내 분과위구성,3개월내 실행위 구성이라는 촉박한 일정을 감안할때 6차 회담때까지 분과위 구성과 협의대상을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아직도 많은 난관이 있다. 13일 본회담에서 다음 회담날짜 하나를 갖고도 40분이나 소비하는 것을 봐도 아직도 양측이 합의를 이루어가는데는 상당한 실천의지와 인내,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합의서관계 실무대표회담」과 병행해 판문점에서 열리는 「핵관련 실무대표회담」은 합의서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합의서 타결과정에서도 핵문제가 최대의 쟁점이 되었지만 이 문제는 자칫하면 남북주도의 합의서 이행에 외부세력의 개입을 불러들이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 이미 국제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결과에 대해 미국측은 벌써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이러한 단계들에 한반도에서 핵확산의 위협을 중지시키는 조치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단서를 붙이고 있다. 이미 미국측은 지난 4차 고위급회담때 핵문제의 진전없이 합의서의 틀에 합의한데 대해 한국측에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유엔에 이르는 국제기구로 확산되고 있으며 내년 2월이면 안보리로 넘어갈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남북간의 합의 역시 실천력 없는 공문서가 될게 뻔하다.
그러나 일부관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번 회담에서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동복 남측대변인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막후 비공식접촉에서 상당한 의견교환이 있었다』며 『핵문제에 대한 대표접촉의 향배를 지켜보라』고 의미있는 시사를 했다.
그는 이를 구체적으로 『북측이 우리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리라 기대한다』『IAEA(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정서명은 물론 비준,발효와 사찰의무에 대한 종래의 입장을 바꾸리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내년 2월에는 IAEA이사회가 있고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곧 이어 팀스피리트훈련이 이어진다.
특히 IAEA이사회에서는 북한의 사찰문제와 관련한 보고서가 채택되고,이 보고서는 안보리로 넘어갈 예정이다. 또 내년 팀스피리트는 핵문제의 해결이 없는 한 첨단무기를 동원,대규모로 치른다는 것이 한미간의 합의사항이다.
정부는 핵문제만 해결된다면 내년 팀스피리트는 재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며,이미 미국측과는 군산비행장의 사찰문제 등을 포함해 합의가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 첫날 남측이 「동시사찰」 제의를 한뒤 북측은 매우 당황했고 아무런 응수도 하지못해 남측은 이날 저녁과 다음날 새벽의 실무대표접촉 제의를 거절했었다. 극적인 전환은 이날 밤 평양에서 모종의 지시가 떨어진뒤 비공식 막후접촉이 이루어지면서부터다. 여기서 갑자기 이틀째 회의가 다음날로 연기되고,합의서 문안협의를 위한 실무대표접촉과 별도로 핵관계 비공식접촉이 이루어졌다.
이 비공식접촉에서는 남쪽에 핵무기가 없다는 사실확인과 북측이 국제의무를 이행하는 문제 등에 의견접근을 보았으며,남북간에 협의할 비핵화문제는 더 논의한다는 내용을 공동발표키로 했었다는 것이다. 다만 「한반도의 비핵화문제와 관련한 공동합의문」 또는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와 관련한 공동합의문」 작성이 시도됐다가 결국은 「공동합의문」의 2항으로 포함됐다.
이 내용을 공표하지 않은 것은 북측이 국제의무를 이행하는 문제는 남북의 합의로 하기보다 당사자인 북한이 독자적으로 대외표방을 하는 것이 모양을 갖추는 것이라는 북측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원식 총리는 합의가 이루어진 12일 저녁 연형묵 총리를 만나 실제 핵문제와 연계된 팀스피리트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언질을 준 것도 이러한 북측의 태도 변화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북측은 핵문제를 외교적인 카드로서는 이미 최대한 활용했으며,남측으로서는 더이상 줄 것이 없을 정도로 다 던져버렸다. 다만 「비핵화」냐,「비핵지대화」냐 하는 명분다툼과 「핵우산」 시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또 재처리시설의 포기문제도 걸림돌로 남아 있으나 남북만이 아니라 일본·미국과의 관계개선에도 전제조건이 되고 있어 북측이 사찰을 받으면서까지 고수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남측당국의 판단이다.
북측의 비공식 언질이 공개적으로 실행이 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남측 정부당국도 아직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양측은 핵문제를 고위급회담에 연계시키지 않기로 한 바 있으나 핵에 관한 「연내합의」 없이는 다른 문제의 진전도 어렵게 돼있다. 정치적 이유로 핵문제등 안보문제를 어물쩍 넘겼다는 국내외 비판이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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