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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장군 한신대장|"정치인 사심 버려야 정의살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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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청렴·강직한 군인의 표상으로 세인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한신 예비역 육군대장(69).
육사 동기생 (2기)인 고 박대통령과의 인연으로 5·16직후 「혁명정부」에서 잠시 내무장관과 감사원장을 지낸것 말고는 평생을 군에 몸담아온 외곬의 「호랑이장군」 .
군서열 1외인 합참의장을 끝으로 75년2욀 대장으로 예편하기까지 숱한 화제를 남겼던 그는 고희를 눈앞에 둔 지금도 여전히 흐트러짐없이 꼿꼿한 모습이었다.
경기도안양시관양동 40평 남짓한 현대아파트 자택에서 부인 김길자여사 (64) 와 단둘이 조용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그는 『제3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고 했다.
제1의 인생이 30여년간의 군생활이고, 제2의 인생이 10년간의 기업경영인 (아시아자동차·대한중석사장) 생활이었다면 85년이후 여생은 제3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제3의 인생이란 전몰장병들에 대한 속죄와 오랜 공직생활로 인해 여의치 못했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민족의 무한한 잠재역량을 확인하는 일, 독서와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부인과 함께 매일아침 6시부터 2시간쯤 걸려 관악산을 오르거나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일, 이웃주민들과 만나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들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85년 대한중석 사장직에서 물러난 직후「서울생활이 싫어」안양에 정착한 그는 요즘도 볼일이 있어 서울나들이를 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한다.
『삭막한 콘크리트 대신 흙냄새와 땅을 밟으며 산다는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라며 사는 곳을 자랑한다.
화제가 정치·군사·통일문제등으로 옮겨지면서부터 대화는 차츰 열기를 더해가기 시작한다.
지휘관으로 있을 당시 엄정한 군기를 생명처럼 여긴 그였지만 창군사상 최초로 「군대가정」 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한장군은 지휘관이 갖춰야 할 두가지 덕목으로 ▲엄격한 아버지나 맏형의 모습 ▲인자하고 따뜻한 어머니나 누나와 같은 모습을 들었다.
「엄」 만 있고, 「정」 이 없으면 부하들을 위축시키고, 「정」만 있고 「엄」 이 없으면 방종하게 된다고 말한 그는 또 『지휘관이란 결국 자신의 명령과 지시를 부하들이 갈 따를 수 있도록 먼저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 이라고 규정지었다.
함남영흥이 고향인 그는 요즘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도 언급, 『핵무기개발 그 자체를 막아야 하는 것은 절대절명의 과제지만 어떤 방법이든간에 남북의 공멸을 자초하는 결과가 돼서는 결코 안될 것』 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지난번 이종구국방장관이 밝힌 한반도전쟁부원론을 적극 지지한다며 동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또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마땅히 대북억제전력을 확충해야 할 것이지만 어떤 경우라도 남북이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 국군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1군사령관을 거쳐 72년 제13대 합참의장을 역임한 바 있는 그는 작년 8·18 군 구조개편으로 지휘관의 가장 핵심적인 권한인 군령권이 합참의장에게 부여된 것에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잘 된 일』 이라며 이를 높이 평가했다.
회고록을 쓸 의향을 묻자 빙긋이 웃으며 『내 회고록을 볼 사람이 누가 있겠소』라면서『말이나 글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이를 실천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느냐』 고 반문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들어 웬만한 인터뷰나 원고청탁쯤은 가볍게 거절해버린다고 한다.
『정치는 안해봐서 갈 모르지만 그 원리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한 그는 『정치란 상반된 이해집단을 잘 조화시켜 새로운 질서를 창출,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것이므로 정치인이나 군인 모두가 사심을 버릴때만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가 보장될수 있다』 고 설명했다.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행적을 돌이켜 반성하며 살아왔다는 한장군은 사회지도자라면 누구나 철저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일찍이 함흥고보를 나와 일본 중앙대법과를 다니던 중 학병으로 만주에 끌러갔다가 광복을 맞아 귀향, 단신으로 월남한 후 군문에 들어선 그는 이때부터 본래 두글자로 된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믿을 신」 한 자로 개명할만큼 매사에 믿음을 중시한다.
특히 군대에서의 믿음은 전투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그것이 없으면 단결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백번 싸워 백번 패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지론이다.
그의 청렴결백과 군인다운강직성을 전해주는 일화는 많다.
5·16직후 현역으로 잠시 내무장관을 맡고있던 시절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시장안에 도로를 내주면 장차 계속해서 재정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친구의 따귀를 때려 내쫓은 일이라든지, 강화도 순시때 차량전복으로 다리를 다치자 혹시 군복을 벗게되지나 않을 까 염려한 나머지 박대통령 집무실에서 뜀뛰기 시범까지 보인 일등은 아직도 군대에서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일화들이다.
군복을 벗은지 L년, 공직에서 물러난지 6년이 되는 지금도 그의 이같은 생활자세와 철학에는 변함이 없다.
77년 이후 그가 대한중석 사장으로 있을 무렵 퇴근시간을 넘겨가며 야근하는 직원들을 불러 평소 근무시간에 태만했거나 상사가 불민해서 쓸데없는 고생을 자초하고 있다며 혼쭐을 냈다는 일화는 그가 얼마나 철저한 원칙주의자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군인은 더욱 군인다워야 하고 정치인은 더욱 정치인다워야 하며 이를 말로써가 아닌 몸소 실천으로 보여줘야만 비로소 사회정의가 바로 설 수 있다.』 고 말한 그는 『비록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주말이 가장 즐거운 시간』 이라며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아보기도 했다.
부인 김여사와의 사이에 일찍이 출가한 딸 ( 45세·41세 )만 둘을 둔 한장군은 서울에 살고있는 둘째 딸이 주말이면 가족들을 데려와 「할아버지 재미」를 맛본다고 했다.
골프대신 테니스와 등산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대부분 시간을 안보관련 서적등의 책을 읽고 사색하는데 보내며 짬짬이 흘러간 옛노래를 듣는것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평상의 일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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