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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 총리 서로 노고 치하/남북합의서 서명하던 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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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외국도 놀란 역사적 쾌거”/정 총리/“산고 큰옥동자 잘기르자”/연 총리
▷만찬장◁
○…12일 저녁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박준규 국회의장 초청만찬은 남북 양측이 서로 농담하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오후 7시15분쯤 정원식 총리와 함께 만찬장에 도착한 연형묵 총리 일행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박의장과 여야 수뇌부·국무위원들과 20여분간 환담을 나눈뒤 만찬장에 정좌.
박의장은 『당초 주마가편의 연설문을 준비했으나 잘돼버려 엉터리 연설을 하게됐다』고 농담,폭소를 자아낸뒤 『이제 이번 회담을 계기로 잃어버린 우리의 40년 역사를 되찾고 7천만겨레의 풍요와 영광을 가꿔나가자』며 『지화자』선창과 『좋다』의 후렴으로 건배.
박의장은 『남과 북은 너와 나의 대립이 아니라 부부·형제·남매와 같은 관계』라며 『온겨레를 불안·공포에서 평화와 통일로 이끌어가자』고 강조.
연총리는 『이제 7천만 겨레가 기뻐하고 민족통일의 서광이 비치게됐다』며 회담결과를 설명. 정총리는 『내일 합의문 서명때까지 마음만 바뀌지 않으면 된다』고 농담해 좌중이 폭소.
연총리는 『북과 남이 서로 다른 제도와 사상을 단합하는 최선의 방식은 연방제밖에 없다』고 전제,『그러나 우리의 연방제로 통일을 절대화하지 않고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에서 토의하여 최고의 통일방안을 협의할 준비가 돼있다』며 연방제의 수정가능성을 시사에 눈길.
이날 만찬에는 상석에 정총리와 연총리를 중심으로 박의장,김영삼 민자당대표,김대중·이기택 민주당대표등이 자리했고 각계인사 1백여명이 북측대표단·수행원·기자들과 함께 앉아 환담.
패티김의 특별무대로 꾸며진 2부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북측기자들은 『이번 합의에 대해 남측 인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등 반응을 취재하기에 바쁜 모습.
북측 유택환 중앙방송보도부장은 『북쪽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자 『북쪽 인민들도 역사적 기본합의서에 매우 반가워 할것』이라고 답변.
그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도 『남북기본합의서는 7천만 겨레의 염원이 결집된 것인만큼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천돼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성사되지 않겠느냐』고 긍정적으로 전망.
▷총리밀담◁
○…12일 저녁 남북 대표회담에서 합의서내용과 핵문제에 대해 타결을 본 직후 남북 두총리는 회담장을 나서며 회담 타결후의 심정들을 주고받았다.
정총리는 연총리에게 『하루 더 자며 술이나 한 잔 했으면 하는 심정』이라 했고,연총리는 『이제는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됐다』고 화답하는등 다정스러운 모습을 연출.
연총리는 정총리가 『잘 타결돼서 좋다』『내일 회담은 참 쉽게됐다』고 하자 『좋은 얘기다. 앞으로 싫은 얘기들은 하지말자. 대표들도 애썼지만 모든 일이 마음먹으면 된다』고 응답.
이어 연총리는 서로 몇번 만나면 이렇게 잘 풀리는데 군복입고 총칼 겨누는 것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털어 놓은뒤 『(남측이)팀 스피리트 훈련을 하면 (북측은)전군이 전투준비를 해야하는등 날카롭다』며 『군대와 군비를 대폭 축소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5차 회담에서 주요 고비를 넘겼으니 앞으로는 절대 회담을 중지하자는 얘기는 하지말고 서로 자극하지도 말자』고 말했으며 정총리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고.
▷서명식◁
○…역사적인 합의서 채택을 위한 13일 제2차 본회의에 참석한 정·연총리등 양측 수석대표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이번 합의서도출을 위해 겪었던 서로의 노정과 노고를 이야기하며 감격에 찬 모습으로 시작.
정총리는 특히 『이번 합의서 채택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인·시민들까지도 예상치 못했던 역사적 쾌거』라고 재차 강조한뒤 『무엇보다 연총리의 지도력이 잘 발휘된 덕택』이라고 연총리에게 감사.
연총리는 이에 대해 『10개월이면 애를 낳는데 1년3개월의 산고끝에 출산한 옥동자인만큼 소중히 키우자』고 다짐.
이동복 남측대변인은 합의서 채택에 따라 앞으로 경제교류가 활성화될 것임을 의식한듯 북측 김정우 대외경제부부장에게 『앞으로 김선생께서 할일이 많을 것』이라 말하자 김부부장은 『다 예견하고 있다』고 화답.
김광진 인민무력부부장은 『내가 할일이 제일 많을 줄 알았다』며 군사문제해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
정총리도 『우리가 민족사의 한장을 열었으므로 모두가 앞으로 할일이 많다』며 『한 일보다 할일이 더 많다』고 응답.
○…13일 본회의는 6차 고위급회담 일자선정문제로 40분간이나 양측이 논란을 벌이는 바람에 「합의서」서명이 예정보다 30분이나 늦은 오전 10시20분에야 이루어졌다.
남쪽은 92년2월5일,북쪽은 2월10일부터 열자고 제안했는데 북측은 내년 2월16일이 김정일 비서의 50회생일이라 1월초부터 2월중순까지는 갖가지 행사가 계속된다며 그 이후로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합의서문본교환이 김비서의 생일이 갖는 의미를 가려버릴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남측은 해석.
남측대표들은 『그렇다면 문본교환만이라도 판문점대표접촉에서 1월중에 하도록 하자』며 합의서 발효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
양측의 논란이 30분이상 계속되자 정원식 총리는 정회를 요청한뒤 대책회의를 갖고 『초청측의 의사를 존중해 분과위발족문제에 대한 협의를 판문점에서 계속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2월18일로 하겠다』고 수락.
○…6차회담 일정이 어렵게 합의된 직후 양측 총리가 다소 굳어진 표정을 풀며 역사적인 합의서 서명에 들어간 시간이 오전 10시20분.
정·연 양총리는 미리 준비된 2부의 합의서에 친필로 「정원식」「연형묵」이라고 한글로 자신들의 이름을 각각 서명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교환.
두 총리는 천천히 또박또박 서명을 하면서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합의서를 교환하면서 연총리는 『역사적인 사인이요』라며 감개무량한 모습이었고 정총리도 『연총리와 내가 서명을 하다니…. 속칭 우리가 궁합이 잘맞아서 그런거요』라고 화답.
이때 대표들과 배석자·보도진까지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폐쇄회로를 지켜보던 회담장 주변의 남북측 보도진들도 박수.
▷청와대방문◁
○…노태우 대통령은 오전 11시20분쯤 접견실로 들어와 먼저 연총리에게 『반갑습니다. 1년3개월만이지요』라며 인사와 함께 악수를 건넨데 이어 정총리 및 최봉춘 북측책임 연락관과도 악수.
노대통령은 『작년 9월 오실때는 구관이었지요. 신본관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집성화해 지었습니다』라고 청와대의 신본관 완공내용을 설명한뒤 『날씨가 추워서 고생이 되지않았습니까』라며 안부를 묻기도.
연총리는 이에 『정총리께서 세심한 관심을 주신 덕분에 잘보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최연락관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라고 인사.
노대통령과 연총리는 인사를 끝내자 취재진들을 물리친채 20분간 단독요담을 했고 나머지 남북의 대표단 일행은 이때 접견실 옆방 집현실에서 담소를 나누며 대기.
노대통령은 연총리와의 요담을 끝낸뒤 집현실에서 북측대표단과 악수를 나누고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낸 노고를 치하. 노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새로 지은 건물에 북쪽에서 오신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돼 매우 기쁘다』라며 『역사적인 일을 하신 여러분께 국민전체를 대표해 노고를 치하한다』고 인사.
연총리일행은 이에 앞서 오전 11시13분 승용차에 분승,청와대 새 본관 현관앞에 도착,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과 이병기의전수석으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연총리와 북측대표단은 이어 현관안 로비에 마련된 방명록에 차례로 서명한뒤 본관 2층으로 안내됐으며,이중 연총리와 최봉춘 책임연락관은 노태우 대통령과의 별도 면담을 위해 정원식 총리·김종휘 대통령 외교안보보좌관과 함께 접견실로 들어가 잠시 대기.
정총리와 연총리는 노대통령의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북측대표들의 늦어진 평양귀환문제등을 화제로 잠시 환담. 이 자리에서 북측 최책임연락관은 김외교안보 보좌관에게 『우리측 임춘길 총리보좌관도 별도 면담에 동석키로 했는데 왜 자리가 없느냐』고 가볍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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