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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다라니경' 최고 증거 충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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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불국사 3층 석탑, 즉 석가탑의 완공 연대가 신라 혜공왕(765~780) 때로 드러나면서 이 부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770년께 인쇄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百萬塔陀羅尼經)'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그렇다"지만 지금까지 이를 뒷받침해온 확실한 근거 하나는 사라진 형국이다.

1966년 석가탑 탑신 내부 사리함에서 발견된 다라니경의 제작 시기는 그동안 700년대 초~750년대로 추정돼 왔다.

삼국유사가 불국사의 중창을 '751년 시작돼 774년 김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이를 완성했다'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는 석가탑 건립 시기를 '8세기 중반'이라고 표현하고 여기에 넣은 다라니경의 제작 시기는 이보다 상당히 앞선 것으로 본다. 서체가 8세기 전기 신라에서 유행한 서법을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다라니경. 1988년 일본 교토에서 전문가를 초청해 5개월간 작업하게 한 결과 겨우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그 근거는 이렇다. 701년께 범어로 된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됐다. 한문 다라니경은 신라 성덕왕 5년(706년) 경주 황복사의 석탑 사리함에 봉안됐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 때 필사본(추정)은 사라졌지만 금동 사리함 뚜껑 안쪽에 음각으로 새긴 제목이 남았다. 이 음각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서법, 특히 둥근 부분을 표현하는 운필법은 석가탑 다라니경과 서로 흡사하다.

다른 증거도 있다. 경문 속에는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재위 685~704) 집권기에만 주로 통용되던 측천무후자가 4종류 10글자 나온다. 중국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석가탑 다라니경이 '702년께 중국 낙양에서 인쇄해 신라에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종이를 조사한 결과 한반도 특산인 닥나무 한지로 밝혀졌다. 게다가 측천무후의 이름인 '照(조)'자가 본문에 들어 있다. 무후 재위 기간에는 쓰지 못하던 글자다. 즉 다라니경은 측천무후자의 영향이 남아 있던 가까운 시기에 신라에서 인쇄됐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근거는 모두 해석과 추정일 뿐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수기의 해석으로 말미암아 "석가탑 제작 연대가 750년대께니 일본 다라니경의 770년은 말도 붙이지 마라"고 단언할 수는 없게 된 형국이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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