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막차를 놓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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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결승 2국>

○ . 이창호 9단 ● . 창하오 9단

제9보(114~122)=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에 양국 검토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벌어놓은 실리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흑은 두터움을 유지할 수 있다면 탄탄대로에 들어선다. 그런데 흑▲가 흑의 유일한 엷음을 두터움으로 바꾸려 한다. 이건 불길한 흐름이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되려 한다.

흑▲가 오기 전에 백이 먼저 이 부근을 유린할 수는 없었을까. 유린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대가를 얻어낼 수는 없었을까.

"큰 수는 없다고 보고 망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곳을 두고 때를 기다린 것인데…." 조한승 9단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맺지 못한다.

상변은 분명 엷은데 수가 진정 없다는 말인가. 거듭되는 채근에 조 9단이 힘겹게 그려낸 그림이 '참고도'백1, 3이다. 백3이 은근하고도 뾰족해서 흑의 응수가 무척 어렵다. 백은 A로 넘어 큰 실리를 확보할 수 있고 B나 C로 끊을 수 있다. 어느 쪽도 승부가 끝나 버리는 수단인 만큼 흑도 머리를 쥐어 짜야 하고 결국 몇 방울의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데 이창호 9단은 백△ 넉 점부터 살렸고 '참고도'는 이제 놓쳐 버린 막차처럼 아쉬울 뿐이다.

114는 이제 와선 절대의 한 수. 한데 115라는 가벼운 단수 한 방에도 백은 가슴이 아려온다. 그냥 이으면 D를 선수당한다. 고심 끝에 116에 두자 117로 따낸다. 이 한 점이란 사실 얼마나 작고 가벼운가. 그러나 비세의 백은 그런 작은 한 점조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 고통스럽다. 게다가 창하오의 119가 강수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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