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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시는 리모델링중] 3. 파리·리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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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파리 지하철 14번선의 종점은 센강 남쪽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역이다. 최신형 무인 전동차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면 크레인과 불도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공사장이 펼쳐진다. 파리의 리모델링을 상징하는 제13구역 재개발, '파리 리브 고슈(Paris Rive Gauche)'사업의 현장이다.'좌안(左岸)'이란 뜻의 리브 고슈는 서(西)로 흐르는 센강 왼쪽 지역의 통칭이다.

공사장 저편에 모더니즘 양식의 국립도서관이 보인다. 1992년 시작된 리브 고슈 사업의 초기 성과물이다. 철도 기지창이었던 2만평의 땅에 96년 세웠다.

이 공구에선 철도 부지 활용에 주안점을 두었다. 강 가까이 있는 오스테를리츠 철도역 일대, 철로들이 얽히고 설킨 부지의 윗부분을 1백m 폭, 3㎞ 길이로 덮어 7만8천평의 인공 대지를 조성한다. 도로와 건물이 들어설 자리다. 철도 부지가 갈라 놓았던 센 강가와 13구역의 거리들을 연결하는 효과도 있다. 지하엔 철길이 그냥 남으니까 공간을 겹으로 활용하게 된다. 땅이 모자라는 파리의 여건에 맞춘 공간 활용 방식이다.

사업을 주관하는 파리개발공사(SEMAPA)의 질 드몽마렝 건축 부문 디렉터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불과 2㎞ 떨어진 도심에서 이만 한 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EU를 겨눈다=파리 재개발의 목표 역시 경쟁력이다. 유럽연합(EU)에서 파리가 지니는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예술의 도시, 박물관 도시에 머무를 게 아니라 국내외 기업은 물론 다국적 기업 본부들도 찾아들 만한 경제 도시를 만들 계획이다.

"다국적 기업은 본사 위치를 정할 때 전 세계 도시를 검토하며, 이들의 유동자본은 투자 가치가 뚜렷한 곳을 찾고 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역정책 담당관인 데브라 마운트포드는 지적했다. 세계화에 부응하려면 도시 기능과 형태를 외부 시장에 잘 적응하도록 바꿀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OECD 국가는 물론 개발도상국들에서까지 세계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도시 르네상스에 나섰다"고 그는 덧붙였다.

◆확산보다 심화를=파리시는 외곽을 순환도로가 감싸고 있어 팽창하기가 어렵다. 현재 2백12만명쯤인 파리 인구는 80년대 이후 약 5만명 줄었다. 시내가 꽉 차서 주거.업무 시설을 더 공급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했다.

90년대 초 자크 시라크 당시 시장(현 대통령)은 13구역의 재개발을 결정했다. 시 중심에서 가깝고 외곽 순환도로와 잘 연결되는 데다 센강을 따라 철로변에 방치된 산업시설이 많아 개발 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했다.

리브 고슈 사업의 총 계획 면적은 2백만㎡(약 60만평). 업무.상업지역 35%, 주거지 30%, 교육시설 10%, 도로 및 녹지 25%다. 70만㎡(21만평)의 사무실을 확보해 6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우선 순위를 둔다. 기본 개념은 역시 '24-7'(24시간 7일 내내 살아 움직이는 공간)의 문화.교육.업무.주거 복합공간이다.

재개발이 끝나면 현재 5천명 정도인 상주 인구가 2만명으로 늘고 낮 인구 6만명, 학생 3만명이 된다. 파리 제7대학, 국립 동양어학원, 건축학교인 파리 발 드 센도 옮겨 온다. 지금까지 미테랑 국립도서관 일대, 프랑스 아베뉘와 센강 산책로, 자동차 도로 등의 공사가 끝났다. 진척도는 공사 진행 기준으로 50%다.

SEMAPA는 디자인 가이드라인도 치밀하게 짰다. 재개발 지역 건축 허가를 SEMAPA에서 내주는데, 건물 색채와 형태 등을 두루 따진다. 센강 주변은 미테랑 도서관을 제외하곤 6~8층으로 제한했다. 재개발 구역 전체를 몇 부분으로 나누어 장 누벨, 크리스티앙 드 포잠파르크, 샤를 드골 공항을 설계한 폴 앙드루 등 저명한 건축가들이 디자인을 맡았다.

◆추진 주체의 양면성=개발을 주관하는 SEMAPA는 70만유로(약 10억원)의 자본금 중 57%를 파리시에서 냈다. 그 밖에 프랑스 국영철도(SNCF) 20%, 중앙정부 5%, 파리 광역시 5%, 민간이 13%다. SNCF는 오스테를리츠역 부지의 소유주 자격으로 참여했다. 언뜻 보기에 공공 투자 사업 같지만, 민간 회사와 마찬가지로 수지 균형을 맞춰야 한다. 재정 지원은 없다. 금융 대출을 파리시가 보증하는 정도다.

드몽마렝은 "지금까지 SEMAPA는 재개발 비용 약 30억프랑(약 6백65억원)을 시의 보증을 받아 은행에서 빌렸다"며 "총 비용이 1백50억프랑(약 3천3백25억원)을 넘을 듯하다"고 했다. 이를 회수하려면 새 사무실 분양가를 평당 4만7천8백50프랑(약 1천만원) 이상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공사인 만큼 경쟁 상대들, 이를테면 런던의 재개발지 도크랜드 같은 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드몽마렝의 말에서 그런 점이 드러난다. "런던의 도크랜드는 도심에서 15㎞나 떨어져 있지만, 리브 고슈는 2㎞ 거리다."

리브 고슈 사업은 88년 연구가 시작됐으며, 91년 계획을 확정해 92년 인프라 공사에 착수했다. 2010년 완공 예정이다.

신혜경 전문기자.도시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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